“키워봐야 남는 건 소똥”…한우농가 뿔났다, 12년 만에 소끌고 국회로 [김기자의 현장+]

김경호 2024. 7.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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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농가, 국회 앞서 ‘한우 반납’ 집회
‘한우법 제정·사룟값 인하’ 요구
민경천 회장 “농가는 반토막이 나 다 죽어”

“한우법을 제정하라! 사료 가격 즉시 인하하라!”

전국한우협회 회원들이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한우산업 안정화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1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전국한우협회 회원 1만2000여명이 ‘소 키워서 남는 건 소똥뿐’이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4개 차로를 가득 메운 채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쳤다.

한우협회는 2012년 이후 12년 만에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우 반납'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 한우협회는 경영난을 겪는 한우 농가들이 정부와 국회에 지원 대책 마련을 강하게 촉구했다.

단상에 오른 민경천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한우농가의 생존권을 지키고 후손에게 안정된 한우산업을 남겨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협회는 절박한 호소가 반영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전국 한우농가 한우산업 안정화 촉구 한우 반납 투쟁에서 전국한우협회 소속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어 민 회장은 “농가는 반토막이 나 다 죽어가는데 예산 절감 실적 높였다고 신바람 난 정부는 품격이 있냐”며 “우리 아들, 딸에게 한우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민 회장과 시·도지회 지회장 등 한우협회 간부 12명은 ‘사료 가격 인하’, ‘최저생산비 보장’ 등이 적힌 천을 두른 채 두 눈을 감고 삭발식을 강행했다. 민 회장은 삭발 이후 “농민을 잘살게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농업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농협이 각자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한우법을 제정하고 사룟값을 인하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전국 한우농가 한우산업 안정화 촉구 한우 반납 투쟁에서 전국한우협회 소속 회원들이 농민가를 부르고 있다.
 
최근 수년간 사룟값 등이 올라 한우 생산비는 더 들어갔으나 고기 도매가격은 내려가 한우 농가들이 경영난을 호소해 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고기소용 배합사료 가격은 ㎏당 578원으로 전년 대비 3.1% 올랐다. 이는 2020년과 비교하면 40.4% 오른 수준이다. 그러나 한우 도매가격은 지난달 ㎏당 1만6715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9.5% 내렸고, 평년보다 21.1% 하락했다.

이에 따라 소 한 마리를 출하할 때마다 230만 원 이상 적자가 나는 상황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우협회는 주장했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전국 한우농가 한우산업 안정화 촉구 한우 반납 투쟁에서 전국한우협회 소속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우 도매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한우농가 경영난이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농경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우 수급 상황을 ‘안정-주의-경계-심각’ 네 단계 중 최상위 단계인 ‘심각’으로 평가하면서, 즉시 수급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심각 단계는 수급 불균형으로 농가 소득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프랑스산, 아일랜드산 소고기 수입까지 앞두고 있어 한우농가가 위기를 느끼고 있다.

유럽산 소고기는 소해면상뇌증(광우병·BSE) 발생으로 2000년부터 수입이 중단됐지만, 이후 국가별로 순차적으로 수입을 재개하는 추세다.

이에 한우협회는 집회에서 ▲지속 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안(한우법) 제정 ▲한우 암소 2만 마리 수매 대책 수립 ▲사료 가격 즉시 인하 ▲정책 자금 상환 기한 연장·분할 상환 ▲긴급 경영 안정 자금 지원 등을 요구했다.

앞서 한우농가 지원을 위한 한우법이 마련돼 지난5월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하루 만인 지난5월29일 폐기됐다. 한우법은 정부가 5년마다 한우산업 발전 종합계획을 세우고, 한우 농가에 도축·출하 장려금과 경영개선자금 등을 지원할 수 있게 한 법안이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축종 간 형평성 논란, 입법 비효율 등의 문제를 들어 한우법 제정을 반대하면서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했고 한우법 제정 대신 축산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어려운 상황에서 한우법 제정이 무산되면서 한우농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밖에 한우협회는 ▲최저 생산비 보장 대책 마련 ▲2025년 농업 예산 확대 ▲산지 가격-소비자 가격 연동제 시행 ▲수입 축산물 무역 장벽 마련 등을 촉구했다.

한우협회는 이날 소를 끌고 와 국회에 반납하는 ‘한우 기증식’을 진행하려 했지만, 전국 각지 농가에서 출발한 한우를 실은 트럭 15대 모두 경찰에 저지당해 집회 장소로 진입하지 못했다.

이에 한우협회는 트럭에 소 모형을 실어 국회로 전달하려 했지만, 경찰 차벽에 막혀 10분 간 대치하다 철수했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전국 한우농가 한우산업 안정화 촉구 한우 반납 투쟁에서 전국한우협회 소속 회원들이 비료 포대를 던져 축사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편 이날 집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한우법의 국회 통과를 약속했다. 제22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에 선임된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가 시작되면 한우법을 농해수위 1호 법안으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은 “한우법 통과 실패에 대한 미안함을 전한다”며 “국민의힘도 한우법을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며 입법을 약속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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