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광고판 화가서 팝아트 거장으로… 상징-은유 신세계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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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26m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 위에 전투기, 금발 소녀, 핵폭발, 스파게티가 함께 그려졌다.
베트남 전쟁과 소비문화가 폭발한 1960년대 미국을 그린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사진)의 대표작 'F-111'.
"화가는 늘 물감 살 돈이 부족한데, 로젠퀴스트는 거대한 광고판을 그리고 남은 물감으로 자기 작업을 했어요. 빌보드를 그릴 때처럼 분필로 가이드 선을 그리고 광고판의 이미지도 차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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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세화미술관서 내일 개막
광고판 남은 물감으로 자기 작품… 전쟁-정치-우주 끊임없는 호기심
분필-사다리 이용해 그림 그려… 르네상스 시대 같은 기법 독특
팝 아트 대표 작가에서 최근 은유와 상징으로 재조명 받는 로젠퀴스트의 회고전 ‘유니버스’가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5일 개막한다. 한국을 찾은 로젠퀴스트 재단 관계자 존 코벳을 지난달 26일 미술관에서 만났다.
● 빌보드 화가에서 팝 아티스트로
생전에 로젠퀴스트는 “브루클린 사탕 가게의 거의 모든 광고판을 내가 그렸다. 자다가도 일어나 위스키병 라벨을 그릴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늘 그림을 그렸던 그는 생계를 위해 빌보드 화가가 됐고 괜찮은 수입을 벌었다. 코벳은 로젠퀴스트가 이 무렵 ‘나머지 그림(leftover painting)’을 그렸다고 했다.
“화가는 늘 물감 살 돈이 부족한데, 로젠퀴스트는 거대한 광고판을 그리고 남은 물감으로 자기 작업을 했어요. 빌보드를 그릴 때처럼 분필로 가이드 선을 그리고 광고판의 이미지도 차용했죠.”
그러다 1960년 동료 화가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해 충격을 받고 전업 화가가 됐다. 미디어 이미지를 차용한 그의 회화는 곧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셴버그 등과 함께 ‘팝 아트’로 알려졌다. 코벳은 “요즘 K팝처럼 순식간에 주목받았다”고 했다.
“하룻밤 사이 무명 화가에서 세계적 작가가 됐죠. 1965, 1966년을 기점으로 일본에서도 팝 아트 전시가 열렸어요. 잭슨 폴록과 윌럼 데 쿠닝의 후대 작가들이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는 스토리부터 워홀이 가진 스타성까지 한몫했죠.”
● 은유와 상징으로 재조명
그러나 “어느 예술가도 그룹으로 묶이는 걸 좋아하진 않을 것”이라고 코벳은 말했다. 생전 로젠퀴스트도 “워홀은 1964년에 처음 만났고, 리히텐슈타인과도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작업을 했다”고 언급했는데, 최근 그의 작품들은 회화적인 표현이나 은유 상징 등으로 재조명받는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시계 중앙의 공백’ 같은 작품은 상단에는 뜨겁게 녹아내리는 듯한 시계와, 하단에 단단한 연필이 배치된 차가운 이미지가 대조를 이룬다. 상반된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식이다. 코벳은 “로젠퀴스트의 파리 전시를 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이건 그림이 아니고 시’라고 했는데 정말 멋진 표현”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논란을 샀던 시카고 시장을 풍자한 작품, 말년 ‘다중 우주’에 관심을 갖고 그린 대형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코벳은 “로젠퀴스트가 80대 할아버지가 되어 ‘다중 우주’ 얘기를 자꾸 했을 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가까운 친구였던 양쯔충(양자경)이 얼마 전 다중 우주에 관한 영화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상을 받아 놀랐다”며 웃었다.
전쟁, 정치, 우주까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밀고 나간’ 것이 로젠퀴스트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는 코벳은 “분필과 사다리를 갖고 르네상스 화가처럼 그렸던 로젠퀴스트의 기법에도 주목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컴퓨터 등 다양한 도구가 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며 “무엇보다 한국의 젊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월 2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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