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K-의약품 찾는다” 국내 제약사 30년 글로벌 성공 전략

김명지 기자 2024. 7.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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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챌린저]
다국가 임상에서 공동개발, 해외 M&A 까지 활발
흑염소 ‘메디’ 의약품 실패 딛고 신약 개발 성공
30년 바이오 기술 집약된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
‘렉라자’는 표적항암제 블록버스터 예약
국내 제약사들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들을 개발해내고 있다. 대웅제약 연구원이 AI(인공지능) 신약개발 시스템으로 신약 후보 화합물질을 탐색하고 있다./대웅제약 제공

지난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센터 유욱준 교수가 유전자 변형 흑염소를 개발했다. ‘메디’로 불린 이 흑염소는 젖에서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G-CSF)가 분비되도록 유전자가 변형됐다. G-CSF는 사람 몸에서만 미량 생산되는 단백질로, 면역기능이 떨어져 병원균 감염에 취약해진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G-CSF 원료는 1g당 9억 원이 넘는 고가의 약물이다. 당시 G-CSF를 활용한 의약품은 미국과 일본 제약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언론은 흑염소 ‘메디’를 두고 ‘토종 흑염소가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이 됐다’고 대서특필했다. 메디의 개발을 물밑 지원한 한미약품은 흑염소 젖에서 G-CSF를 정제하는 기술을 확보해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젖에서 원료를 분리 정제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국내 생명과학 연구의 흑역사로 기록될 뻔한 흑염소 ‘메디’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신약 ‘롤론티스(성분명 에플라페그라스팀)’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어서다. 롤론티스는 G-CSF을 주성분으로 개발한 신약이다. 한미약품은 메디의 실패를 발판으로 G-CSF 의약품 연구를 거듭했고, 끝내 성공했다. 롤론티스는 미국 시장 진출 첫해인 지난해 약 8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하겠다고 신약에 도전했지만, 시장의 장벽은 높았다. 당장 성과가 없다고 투자자는 물론 회사 안에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난했다. 최근 해외로 나가는 회사들은 그런 실패를 통해 배우고 자기 기술만 고집하지 않고 외부와 적극적인 협력을 한 결과이다. 이제 전 세계가 한국 신약, K-의약품을 찾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누적된 R&D 역량으로 세계 시장 공략

2231조원. 지난해 글로벌 의약품 시장 규모다. 한국 제약 시장은 그중 1% 조금 넘게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들은 외국 제약사 약을 사다 팔거나 특허가 만료된 약을 복제한 약을 만드는 데 그쳤다. 외국 제약사와 체결한 조(兆) 단위의 신약 기술 수출도 반환당하기 일쑤였다.

지난 1999년 SK케미칼의 선플라주 이후 국산 신약이 30개 넘게 나왔지만 대부분 국내용이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한국 생명과학 불신론까지 번졌다. 그러나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제품을 개발해 내고 있다.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인 ‘나보타’도 롤론티스처럼 오랜 연구개발(R&D) 끝에 성공한 의약품이다. 올해로 출시 10주년을 맞은 나보타는 지난 2019년 아시아 제약·바이오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았다.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 균(菌)이 만드는 신경독이다. 약한 근육 마비를 일으켜 주름을 펴고 눈 떨림을 없애는 효과를 내 미용 목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생화학 무기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이로 인한 국가 규제 때문에 시장 진입이 어려워, 1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8개 회사만 경쟁했다.

나보타는 한국 보툴리눔 톡신, K-톡신의 글로벌 시대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10대 보툴리눔 톡신 제조사 가운데 4곳(메디톡스, 휴젤, 휴온스, 대웅제약)이 한국 업체다. 박성수 대웅제약 대표는 “나보타에 대웅제약의 30년 바이오 기술 노하우가 집약됐다”며 “꾸준한 연구로 글로벌 진출 확대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FDA 승인받은 국산 신약

◇항암 신약에서 혈액제제까지 미국 시장 진출

유한양행이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 신약인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는 올해 안에 미국 시장에 출시될 전망이다. 렉라자는 1~2세대 ‘상피성장인자수용체(EGFR)’ 표적 치료제가 듣지 않는 내성 환자를 위해 만든 3세대 표적치료제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항암 신약이 미국에서 팔리는 것은 렉라자가 처음이다.

렉라자의 성공에 힘을 얻은 유한양행은 글로벌 신약 개발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렉라자를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육성하는 것은 물론 이른 시일 안에 제2, 제3의 렉라자를 개발해 내겠다”고 말했다.

GC녹십자는 혈액제제 ‘알리글로(ALYGLO)’로 미국 시장 진출에 나섰다. 알리글로는 선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에게 투약하는 면역글로불린 10% 정맥주사다. 알리글로는 지난해 12월 미국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다. 녹십자는 최근 미국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와 알리글로의 등재 계약을 체결했다.

PBM은 사보험 처방 약의 관리 업무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업체로, PBM을 통한 처방집 등재는 미국의 의료보험 급여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뜻한다. 의약품 처방을 늘리려면 여러 처방집에 등재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면역글로불린 시장은 116억 달러(약 16조 원) 규모에 이른다. 회사는 올해 5000만달러의 매출을 일으킨 뒤 매년 5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수천억 규모의 대형 외국 제약사 M&A 봇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대규모 외국 제약사 인수합병(M&A)도 봇물이 터지듯 하고 있다. 얼마 전 SK바이오사이언스는 독일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IDT 바이오로지카를 총 339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IDT바이오로지카는 지난 1921년 옛 동독 데사우의 ‘안할트 세균학 연구소’가 전신인 오랜 전통의 바이오 기업이다.

모회사인 클로케가 독일 통일 이후 데사우 백신 공장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고, 글로벌 의약품 백신의 위탁생산업체로 성장했다. IDT바이오로지카는 독일과 미국에 직원 1600명을 두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미국 백신 제조사 노바백스에도 1000억원대 지분 투자를 했다.

앞서 LG화학은 2022년 미국 신약 개발사인 아베오 파마슈티컬스의 지분 100%를 5억7100만달러(약 7934억원)에 인수했다. 아베오는 지난 2002년 설립된 바이오 기업이다. 지난 2010년 나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는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FOTIVDA)를 개발해 연간 2000억원가량 매출을 내는 기업이다.

이밖에 CJ제일제당은 2021년 11월 네덜란드 바이오 CDMO 기업 바타비아바이오의 지분 75.8%를 2677억원에 인수했다. 바타비아는 유전자치료제를 위탁개발 생산하는 기업으로, 얀센 백신의 연구개발(R&D)과 생산을 맡았던 경영진이 지난 2010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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