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이 안 멈춰요” 백일해 환자 366배

정해민 기자 2024. 7. 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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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5127명, 작년엔 14명 발생… 아동·청소년 92%
2급 감염병' 백일해가 역대급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2024.5.9 /뉴스1

올해 백일해(百日咳) 환자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백일해는 백일해균에 의해 생기는 호흡기 질환으로, 수두·홍역과 같은 제2급 법정 감염병이다. 백일해라는 이름은 100일 동안 기침을 한다는 의미다. 백일해에 걸리면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발작성 기침이 4주 이상 이어진다. 기침을 하거나 숨을 들이쉴 때 ‘훕(whoop)’ 소리가 나서 영어로는 ‘whooping cough(훕 소리가 나는 기침)’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픽=이철원

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까지 올해 우리나라 백일해 누적 발생 수는 5127건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1~6월·14명)의 366배다. 백일해는 지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총 2683건 발생했다. 올해 약 6개월 동안 발생한 백일해가 지난 10년간 발생한 백일해의 1.9배에 달하는 셈이다.

질병청은 3~5년 주기로 반복되는 세계적 백일해 유행이 돌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8년 7~12세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백일해가 유행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코로나 기간 줄어들었던 백일해 등 호흡기 질환의 발생이 최근 증가하고 있다”며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감염이 줄어들면서 면역도 약해져 이번 유행 주기에 폭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이철원

지난달 말 경남 창원에 사는 고등학생 A(16)군은 한 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1~2주 기침이 심해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같은 반 친구가 백일해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백일해 확진을 받은 A군도 항생제를 처방받고 5일 동안 등교하지 않았다.

올해 백일해 환자 중에는 5~19세 어린이·청소년이 4734건으로 전체의 92.3%를 차지한다. 지역별로는 경남(1248건)과 경기(1225건)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이어 인천(626건), 서울(350건), 경북(223건), 부산(221건) 등 순이었다. 지난달 엄마들이 주로 가입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세 살 아이가 기침을 많이 해 코로나일까 봐 자가 진단을 했는데 음성이 나왔고, 병원 가서 검사했더니 백일해였다. 3주 됐는데 기침이 낫지 않아 걱정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백일해가 유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초부터 지난 5월 25일까지 백일해가 4864건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746건)의 약 2.8배다. 필리핀은 지난 4월 27일까지 올해만 2521건이 발생하고 96명이 사망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도 유럽 각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백일해가 유행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백일해의 잠복기는 보통 7~10일이다. 감염 후 2주 동안은 콧물, 약한 기침 등 일반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전염력은 이 시기 가장 높다. 이후 4주 동안은 기침이 점점 심해져 참을 수 없는 발작성 기침도 나온다. 발작성 기침은 밤에 더 자주 나타나고 하루 평균 15회 이상 발생한다. 숨을 들이쉴 때 ‘훕’ 소리가 나는 것도 이 시기다. 이후 회복기에 접어들면 2~3주에 걸쳐 기침이 서서히 줄어든다. 질병청은 학교·유치원 등에서 백일해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먹기 시작한 후 5일 동안 등교·등원을 하지 않고 집에서 격리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백일해는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침이나 콧물을 통해 옮는다. 면역력이 없는 집단에서는 1명이 12~17명을 감염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합병증으로는 폐렴, 중이염, 경련 등이 있다. 심할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다만 백일해 사망자 집계를 시작한 지난 2011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백일해로 사람이 죽은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는 생후 2·4·6개월 때 각각 1·2·3차 백일해 등 예방접종을 맞도록 하고 있다. 이후 15~18개월에 4차, 4~6세에 5차, 11~12세에 6차 접종을 맞아야 한다. 지난해 초등·중학교 입학생 예방접종 확인 사업 결과, 초등학교 입학생 중 5차 접종자는 96.8%, 중학교 입학생 중 6차 접종자는 82.5%였다. 6차 접종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10년에 한 번씩 추가 접종을 하는 것이 백일해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백일해 예방접종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8년 유행(980건)에 비해 올해 지나치게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마상혁 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백일해균이 진화하면서 백일해 예방접종의 효과가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는 백일해가 급증한 원인에 대해 더 논의하고, 어린아이나 어르신 등 고위험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코로나와 같은 조기 진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KP.3·KP.2 등 신종 코로나 변이가 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는 신종 변이가 우세하지 않다. 질병청의 감염병 표본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달 16~22일 기준 전체 급성 호흡기 감염증 의심 환자 중 코로나 환자는 6.4%였다. 3주 전인 지난 5월 말보다 1.3%포인트 증가했다. 다만 올해 4월부터 20% 미만으로 떨어진 이후 아직 눈에 띄게 늘어난 수준은 아니다.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신종 변이 때문에 2~3주 뒤 확진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의 치명률과 중증화율은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고위험군은 여전히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일해(百日咳·whooping cough)

백일해균 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 100일 동안 기침(cough)이 끊이지 않고, 숨을 들이마실 때 ‘훕’ 소리(whooping)가 난다는 뜻에서 왔다. 감염자의 기침·재채기(비말)와 침·콧물이 묻은 물건 등을 통해 전파된다. 전 연령이 감염될 수 있으며, 가족에게 백일해를 옮길 확률은 80%에 달한다. 생후 2·4·6개월의 기초접종과 15~18개월, 4~6세, 11~12세에 추가 접종을 한다. 현재 접종률은 95%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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