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암투·상속 전쟁… 연기는 명품, 스토리는 막장

김민정 기자 2024. 7. 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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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제작진 몰리는 OTT… 더 자극적이고 더 오락적으로
드라마 '돌풍'의 박동호(설경구·왼쪽)와 정수진(김희애). /넷플릭스

국무총리는 약물로 대통령 시해를 시도하고, 부총리는 물에 젖은 천을 대통령 얼굴에 덮어 숨을 끊는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의 내용이다. 극장가 ‘천만 관객 배우’ 설경구가 처음으로 택한 OTT 드라마. TV 드라마로 이름을 날렸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으로 주목받았다. 대사와 연기는 훌륭하다. 하지만 이제껏 정치 드라마에서 본 적 없던 ‘막장’ 전개가 눈을 의심케 했다.

3일 공개된 디즈니+의 ‘화인가 스캔들’도 ‘고자극’ 드라마 행렬에 합세했다. ‘치명적’ ‘도파민’ 등의 홍보 문구를 내세웠다. 재벌가 며느리가 상속권 분쟁 때문에 총격 테러·자동차 폭파 테러 등 살해 위협을 받는다는 비현실적인 내용에 불륜 소재까지 더해졌다.

어려운 극장가와 방송 드라마 축소로 연기파 배우와 제작진들이 줄줄이 OTT 드라마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OTT 드라마들이 시청자의 뇌를 얼얼하게 할 빠르고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면서 막장 전개가 ‘디폴트’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오락성을 중심에 두다 보니 메시지와 깊이가 드러나는 작품이 나오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도 나온다.

그래픽=이진영

‘돌풍’은 배우 설경구·김희애·김미숙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다.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펀치’ 등 일명 ‘권력 3부작’을 쓴 박경수 작가는 사회 비판 메시지와 필력이 돋보이는 작가다. OTT와 만나 어떤 작품이 나올지 관심이 컸다. 장점은 분명했다. 높은 몰입감, 평범하기를 거부하는 주옥 같은 대사들에 호평이 나왔다. “여기가 나의 현충원이다” “나는 떠난다. 남겨질 것들을 위해서” 등 주인공 박동호(설경구)의 대사는 짧고 의미심장하며 특히 쾌감을 준다. 연출을 맡은 김용완 PD는 “문학적으로 훌륭한 글이라 대사들이 기교에 묻히지 않도록 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재나 전개는 개연성이 크게 떨어지고, 도파민을 터트리는 데에 급급한 인상을 줬다. 총리 박동호가 자신의 정치 인생을 이끌어준 대통령을 시해하는데, 그 이유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돼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다. 결국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고 목적을 달성하더니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대통령 시해’라는 소재를 넷플릭스는 중점 홍보했다. 부총리 정수진(김희애)과 벌이는 대결 수준도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녹음·몰카·협박 등이 반복된다. 실존했던 대통령들과 등장인물 사이에 유사한 점들도 있어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 몰이도 하는 중이다.

윤석진(충남대 교수) 드라마 평론가는 “정치 소재를 빌린 강도 높은 복수극으로 정주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서사에 빈틈이 있고 개연성이 낮은 것도 사실”이라며 “이처럼 오락성과 흥행성에 초점이 가는 경우 작가의 문제 의식이 얼마나 깊이 있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고 했다.

드라마 '화인가 스캔들'에서 서도윤(정지훈)이 오완수(김하늘)를 구출하는 장면. /디즈니+

‘돌풍’이 권력층을 소재로 했다면, 배우 김하늘·정지훈(비)·윤제문 등이 출연한 ‘화인가 스캔들’은 재벌가 소재로 펼쳐진다. 역시 휘몰아치는 ‘도파민’을 강조한 드라마다. 대한민국 상위 1% 화인가의 며느리 완수(김하늘)가 상속권 분쟁으로 생명에 위협을 당한다. 위협 수준이 ‘총격 테러’ ‘자동차 폭파 테러’다. 남편에게는 내연녀가 있고, 완수는 자기를 지키는 경호원(정지훈)과 점점 서로를 의식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혼을 빼놓는 빠른 전개는 ‘몰아 보기’를 하는 OTT 시청자층에 최적화된 형태다. 조금만 느슨해도 이탈하는 시청자가 나오기 때문에 제작자에게도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파민’ 이후 남는 게 없다는 시청자들의 평도 나오고 있다. 자본과 인력이 OTT로 집중되는 와중에 드라마의 다양한 결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TV 단막극 등 작품성에 집중한 드라마 명맥이 끊기고, 역량 있는 제작자를 기를 ‘인큐베이터’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 오락성을 강조한 고자극 드라마가 정말 성공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돌풍’은 한국에서만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고 아시아 10여 국가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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