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가상 아이돌이 더 좋아

김지윤 디지털 에이전시 스텔러스 대표, '아이들의 화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저자 2024. 7. 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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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 집들이를 갔다. 커피잔에 캐릭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응, 버추얼 아이돌인 ‘플레이브’의 멤버야.” 친구는 사랑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소개했다. 몇몇 친구의 놀란 기색에 친구는 ‘덕후’답게 곧바로 앨범 CD를 꺼내왔다. 노래도 좋고 작사·작곡도 자체적으로 한다고 자랑했다. 나이 서른인 여성이 눈을 빛내며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 외모로 만들어진 ‘가상 인간’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었다.

버추얼 아이돌은 2D 혹은 3D 그래픽 형태로 존재한다. 몸까지 전부 그래픽인 경우도 있고, 얼굴만 AI로 변환하기도 한다. 플레이브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가수가 몸에 특수 장치를 달고 노래하고 춤추면 표정과 몸짓을 그림으로 치환해 만들어낸다. 노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이 부르지만, 실제 누구인지는 철저히 가려진 채 가수들의 얼굴과 외모는 화면으로만 볼 수 있다.

얼마 전엔 오프라인 콘서트도 개최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캐릭터를 연기하는 가수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3대 설치됐다. 촬영용 스튜디오에서 멤버들이 노래하고 춤추면 그 모습이 실시간 그래픽으로 만들어져 대형 스크린에 송출됐다. 만화영화 주인공들이 나오는 것 같은 팬 콘서트는 선예매 때 동시 접속자 수 7만 명을 기록했다. 이 중 티켓을 거머쥔 사람은 이틀 공연 입장객 6000명뿐이었다. 이러한 열기를 입증하듯 가을에도 콘서트가 예고돼 있다.

진짜 사람도 아닌 버추얼 아이돌의 어떤 점이 좋은 걸까. 집주인은 의외의 답을 줬다. 인간 아이돌과 그리 다르지 않더라는 것. 어차피 인간 아이돌도 화면으로만 보고 실제로 만나기는 힘든데, 버추얼 아이돌은 훨씬 더 정성스럽게 음성 메시지나 라디오를 활용해 팬들과 소통해주고 그래서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는 것.

실시간 그래픽, 원격 소통, 모바일 대화까지 미디어 발전에 따라 비(非)현실이었던 것들이 한층 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진짜 사람이냐, 가상의 캐릭터냐 따지는 것보다, 내게 의미 있고 내가 좋아하는 관계가 더 소중한 것이다. 실제 인간들 사이의 만남도 대부분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버추얼 아이돌이 진짜 아이돌보다 더 인간적이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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