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에 취한 ‘뉴욕의 영웅’… 줄리아니, 변호사 자격까지 뺏겼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4. 7. 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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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 뒤집으려 거짓말하다 발목 잡힌 前뉴욕 시장 줄리아니
미국 뉴욕주 법원은 2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에서 한 해 2000명이 범죄로 사망하던 1983년 한 남성이 뉴욕 남부지검장에 취임했다. 1944년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1개 마피아 조직을 소탕하고 화이트칼라 범죄에도 거침없이 칼을 휘둘러 ‘강한 공권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내부자 거래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월스트리트의 거물 아이번 보스키를 잡아넣은 것도 그였다. 검사로서 명성을 발판 삼아 민주당 텃밭인 뉴욕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시장직에 도전해 1993년 당선됐다. 2001년 9·11 테러 당시엔 전립선암 투병 중에도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하며 ‘미국의 시장(市長)’으로 불렸다. 루디 줄리아니(80) 이야기다.

영웅의 이야기 같았던 삶은 극적으로 추락했다. 온갖 소송과 추문에 휘말린 줄리아니는 이제 변호사 자격마저 잃게 됐다. 2일 뉴욕 맨해튼 항소법원은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줄리아니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고 뉴욕주의 변호사 및 법률 고문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고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하자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줄리아니는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퍼뜨렸다. 예컨대 바이든이 승리한 경합주 조지아에서 미성년자 수만명이 불법으로 투표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조지아주 감사 결과에 따르면 미성년자는 단 한 명도 투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필라델피아에서 2011년 사망한 복싱 영웅 조 프레이저를 비롯해 수천명의 사망자가 투표에 참여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도 반복적으로 유포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한 2021년 1월 6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싸워서 재판을 받자”고 연설해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줄리아니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 유세에 적극 참여해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정부의 유력한 초대 국무장관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9·11 테러 당시 보여준 리더십을 내세워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사퇴하고 로펌 등을 경영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트럼프와 인연을 맺은 순간이었다.

일부 변호사 단체 등은 줄리아니가 법조인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와 윤리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법원에 징계를 신청했다. 2021년 뉴욕주 항소법원은 줄리아니의 언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청문회 없이 변호사 자격을 임시로 정지시켰다. 이후 지난해 10월 청문회를 거쳐 2일 변호사 자격을 정식으로 박탈한 것이다. 항소법원은 줄리아니가 “선거 과정의 무결성을 근거 없이 공격하고 훼손했다”며 “2020년 선거 이후 국가적 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이에 대해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줄리아니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허위로 가득 찬 고소에 따른 자격 박탈”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DC 지역에서도 그의 변호사 자격 박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줄리아니는 최근 계속해서 웃음거리가 됐다. 2020년 10월엔 코미디 영화 제작진의 몰래카메라에 넘어가 여배우를 따라 호텔방에 들어간 영상이 공개됐다.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 중 검은 염색약이 땀에 녹아 흘러내리는 장면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현재는 구독자 약 53만명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새긴 ‘루디 커피’를 인터넷에서 한 봉지에 29.99달러를 받고 판매한다.

재정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는 전직 조지아주 선거관리요원 두 명이 개표 조작에 가담했다는 주장을 펴다 1억4800만달러(약 1927억원) 배상 판결을 받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AP에 따르면 5월 말 기준으로 줄리아니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약 9만4000달러(약 1억3000만원)다. 맨해튼에 있는 그의 호화 아파트는 약 79억원에 매물로 나왔다. 지난달엔 애리조나주에서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구치소에서 머그샷(범죄인 식별 사진)을 찍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줄리아니가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과 관련해 수많은 법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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