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컨트롤 타워 없는 밸류업 정책
총리가 진두 지휘한 일본처럼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 맡아야
요즘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고립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초부터 시작한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정책’이 추진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금감원장만 밸류업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정부 부처나 정책 당국자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지난 한 달 동안에만 밸류업과 관련한 소신 발언을 5차례 했다. 매주 한 차례 이상씩 작심 발언에 나선 것이다. 발언 내용도 논란의 핵심을 정통으로 건드린 것이 대부분이다. “주주 중심의 경영 문화 정착 등 (한국 기업 지배구조에)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사회에 대한 소송 남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재계의 숙원인 ‘배임죄 폐지’ 카드를 내놓는가 하면, 상속세 개편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같은 세금 이슈도 꺼냈다.
그가 던진 각각의 이슈들은 결론이 어떻게 나든 관계없이 밸류업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원장 혼자 힘만으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과 배임죄를 규정한 형법 등은 법무부 소관이다. 상속세와 금투세 같은 세금은 기획재정부의 몫이다. 이런 법률을 고치는 것은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을 감독하고 자본시장의 불법을 적발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금감원의 권한 밖이다. 금감원장이 정부의 일원으로서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법을 고치는 것은 주무 부처의 역할이다. 게다가 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면 절대 의석을 갖고 있는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
밸류업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여러 부처가 얽힌 정책을 풀어나갈 때는 중심을 잡아주는 컨트롤타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구심점 역할을 하는 주체가 없는 실정이다. 밸류업의 불씨는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폈지만, 이후 대통령실과 금융위원회는 정책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제정책의 총괄 부처인 기재부도 밸류업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가 주도해 3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상법 개정이나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율 인하 같은 핵심 이슈들은 내년 이후 중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밸류업의 원조 격인 일본 사례는 우리나라와 분명하게 대비된다. 2021년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국민자산소득 2배 증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은행 예금에 편중된 가계 자산을 주식시장으로 이전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자산운용입국(資産運用立國)’ 정책을 폈다. 총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 기업인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 밸류업을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그는 2022년 9월 뉴욕 투자설명회에서 “일본 경제는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오타니 쇼헤이 선수 같은 이도류(양손으로 각각 다른 무기를 다루는 것)다. 성장과 분배의 양립이 가능하다. 안심하고 일본에 투자해 달라”고 했다. 2년 전 2만엔대 중반에서 움직이던 일본 닛케이평균이 올 들어 4만엔을 넘어 ‘버블 경제’ 때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비결은 총리의 진두지휘로 내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사령탑 없이 손발이 각자 따로 노는 오합지졸식 정책으로는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국익(國益)을 위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해온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희미해진 밸류업 불씨가 꺼져 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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