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엄마의 레시피

남궁창성 2024. 7. 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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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우리집 별미는 호박전이었다.

비가 오면 엄마는 돌도 씹어 먹을 아들을 위해 호박전을 부치셨다.

나는 울타리로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 실한 호박을 따 엄마에게 드렸다.

진한 향과 달콤한 맛에 얼굴 가득 웃음 짓는 아들을 보시며 엄마는 그냥 따라 웃으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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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우리집 별미는 호박전이었다. 비가 오면 엄마는 돌도 씹어 먹을 아들을 위해 호박전을 부치셨다. 나는 울타리로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 실한 호박을 따 엄마에게 드렸다. 곧이어 허기를 자극하는 기름 냄새가 부엌을 빠져 나와 담장을 넘었다. 그렇게 호박전 부침은 동네잔치로 무르익곤 했다.

엄마 반찬은 들과 산에서 왔다. 그 가운데 질경이 볶음이 정말 맛났다. 들녘에 지천으로 자라는 질경이를 뜯어 흐르는 물에 씻으셨다. 살짝 삶아 찬 물에 서너 차례 씻은후 있는 힘을 다해 손으로 꼭 짜내 물기를 빼셨다. 잘 달궈진 무쇠그릇에 들기름을 뿌려 들들 볶은후 상에 올리면 밥상은 풍성해졌다.

여름철 엄마는 산을 자주 오르셨다. 해가 코끼리산에 기울 무렵 큰 자루에 산나물을 한가득 담아 오셨다. 그리고 마중나온 아들을 위해 나물 더미 속에서 더덕과 잔대를 골라 주셨다. 나는 우물로 달려가 대충 씻어 질겅질겅 씹었다. 진한 향과 달콤한 맛에 얼굴 가득 웃음 짓는 아들을 보시며 엄마는 그냥 따라 웃으시곤 했다.

늦가을에는 풋고추를 무명실에 꿰어 대청마루 기둥에서 말리셨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엄마는 막내 손가락 같은 작은 풋고추를 한 바구니 따오셨다. 하나하나 씻어 바느질하듯 한 땀 한 땀 꿰어 나가셨다. 말린 풋고추에 소금을 살살 뿌려 들기름에 노랗게 볶아 내면 겨울 한철 밥도둑이 됐다.

서울살이 17년 동안 사먹는 음식은 끝내 적응이 안됐다. 냉면 고명으로 돼지고기가 올랐다. 조미료 냄새가 진동하는 김치찌개는 불쾌한 뒷맛만 남겼다. 전국에서 몰려든 숱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마련인 도회지 음식은 입 안의 모래처럼 늘 겉돌았다.

귀향후 미각을 되찾고 있다. 엄마의 손맛은 더 이상 맛볼 수 없지만 소박한 밥집에서 엄마를 만나곤 한다. 춘천문화예술회관 옆 골목에 ‘온반’(溫飯)이 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곁들여 나온 가지찜 무침, 고춧잎나물, 아욱국이 침샘과 눈물샘을 자극했다. 주방을 오가며 반찬을 더 내오시던 어르신의 투박한 손이 엄마의 굵은 손마디를 닮아 있었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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