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생태계 파괴 시대, 예술이란 무엇인가

한은형 소설가 2024. 7. 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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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美食 영화 ‘프렌치 수프’를 왜 급진적이라 표현했을까
바위에 산산이 부서지는 포말에는 언뜻 終末의 아름다움이
지구 생태계 파괴되는 인류세… 생명이 없으면 우주도 없다
일러스트=이철원

미식이란 무엇인가.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 더 맛있는 것과 덜 맛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나는 미식을 좋아하나 내내 미식을 말하는 자리에 있다 오면 피로해진다. 오히려 허기지거나 음식에 질려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그래서일까. 궁극의 미식에 대해 시종 논하는 프랑스 영화 <프렌치 수프>를 보고 나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이 영화는 현시대에 너무도 이상적이며 한가롭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목동이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부는 풀피리 같았달까. 사과마저 귀해진 작금의 현실 앞에서 대자연의 풍요를 만끽하며 예술하듯 요리하는 영화는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긴 여름을 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가 앞으로의 여름 중 가장 짧은 여름일 것이고, 여름은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그렇다. 기후 위기라는 거창한 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계절의 순환과 흐름이 뒤틀려 버렸음을 우리 모두 실감하고 있지 않나? 가장 흔한 과일이던 사과 값이 이렇게나 뛴 건 기후 변화가 원인이라고 듣지 않았나? 미식의 나라이자 농업 대국인 프랑스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사과 한 알’ 구하기 어려워진 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그런 시대에 20년 동안 요리에 헌신하는 남녀가 나오는 19세기 배경 영화를 만든 감독의 속내가 궁금했다. 또 이 영화에 감독상을 안긴 칸 영화제의 복심도 궁금했다.

미학과 정치 중에서 정치의 편을 들어주는 게 칸 영화제라고 생각해왔고, 누군가는 그런 칸 영화제를 ‘급진적’이라고 말했다. <프렌치 수프>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영화지만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감독상을 받은 게 의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가 “올해 경쟁작 중 가장 급진적인 영화”(버라이어티)라는 평가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의아해졌다. 음식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룬 ‘푸드 로맨스’를 급진적이라고도 하나? 아니면 말초 감각에 지배된 이 시대에 음식과 사랑 같은 고전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급진적이라는 말인가?

답은 다른 곳에서 얻었다. 성곡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프랑스 현대사진>전에서 소피 아티에(Sophie Hatier)의 사진을 보고서였다. 강물(바다일 수도 있다)과 산, 바위에 산산이 부서지는 포말, 땅에 떨어지고 있는 폭포를 찍은 사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탄복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은 종말의 기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풍광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사진이 말한다고 느꼈다. 브로슈어에 따르면 풍경과 초상, 생명이라는 주제를 작가는 “사람은 산처럼 찍고 산은 사람처럼 찍는”다. 다음 문장을 보고 머리가 얼얼해졌다. “(작가는) 이를 통해 생태계가 파괴되는 인류세에 지구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전한다.”

<프렌치 수프>를 만든 트란 안 훙이 하려던 것도 이건가 싶었다.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 사계의 생명력과 권능을 물 흐르듯 묘사함으로써 그것이 이제는 희미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는 역설 말이다. 그렇다면 칸 영화제 측의 ‘올해 가장 급진적인 영화’라는 평이 이해된다. <프랑스 현대사진>전의 기획 의도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는 인류세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오늘날의 예술 창작에서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 이는 근본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인간의 존재가 덧없으면서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되새기고자 하는 마음과 같다.”(에마뉘엘 드 레코테, 파리 <포토 데이즈> 디렉터)

영화에서 여름의 생명력을 찬미하는 주인공 외제니가 여름을 나지 못하고 죽는 것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먹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더 이상 먹지 못하면 인간은 죽고, 인간은 죽으면 더 이상 먹지 못한다. 살아 있어야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미식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을 남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이런 말도 했다. “생명이 없으면 우주도 없으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양분을 섭취한다.”(『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 홍서연 옮김, 르네상스) 세상의 모든 미식에 대해 논하는 책의 첫 문장이었다. 이것만은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바뀌지 않을 원초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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