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죽음 앞에서 무너진 이성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4. 7. 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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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날이 밝았다. 간밤에도 환자가 많았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수많은 사실 중 하나는, 아무도 아프지 않은 날은 없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기어코 응급실을 찾아와 침대를 채운다. 고통 없이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다. 누군가는 오늘도 반드시 아픈 것이다. 아침 퇴근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 전화가 걸려 왔다. 중년 남성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의식이 없다고 했다. 오늘 근무의 마지막 환자가 될 것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환자가 구급차에서 내렸다. 한 대원이 흉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심정지라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이 앞에서 심정지가 발생했습니다.” 카트를 끌고 소생실로 들어와 환자를 옮겼다. 심폐 소생술을 하면서 외상 흔적을 찾았다. 후두부에 출혈이 있어 머리에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다. 경추 보호대를 잠시 풀자 목 움직임이 어색했다. 다시 보호대를 채우고 대원에게 물었다.

“사다리라면 높지 않을 텐데, 어떻게 사고가 났나요.”

“현장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환자는 사다리와 함께 작은 구덩이로 떨어진 상태였다. 위쪽에는 트럭이 서 있었다. 아마 트럭 바닥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작업하다가 미끄러져 떨어진 것 같았다. 사다리는 중심이 위태롭고 높다. 게다가 하필 트럭 위에 올라 있었다. 작업자는 집중하기 때문에 중심을 잃으면 후방을 살피지 못하고 넘어진다. 하필 그가 추락한 쪽에는 작은 구덩이가 있었다. 일반적 사다리 추락이 아니었다.

심폐 소생술을 유지하자 그의 심박동이 잠시 돌아왔다. CT(컴퓨터 단층 촬영)에서 심한 뇌출혈과 경부 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스마트폰을 열어 보호자에게 환자가 위독하니 어서 병원으로 오라고 전했다. 다행히 아내와 자녀가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소생실로 돌아온 환자에게 다시 심정지가 발생했다. 머리와 목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심정지 상태라 응급 수술이 불가능했다. 처음부터 죽음에 준하는 외상을 입은 것이다. 심박이 돌아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사망을 선고했다.

소생실 바깥으로 나오자 아내와 아들로 보이는 보호자가 있었다. 환자 이름을 호명하자 그들이 대답했다. 뒤이어 눈빛이 살아있는 여성이 들어왔다. 환자의 딸로 보였다. 녹음 중을 뜻하는 빨간 표시가 선명한 스마트폰이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내가 입을 열자 그가 손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아버지가 트럭 일을 하시지요?”

“네. 맞습니다.”

“아버지는 트럭 바닥에 사다리를 놓고 작업하다가 떨어지셨습니다. 추락 시 큰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이미 의식을 잃….”

“으악….”

순간 그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았다. 그러고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를 지르며 통곡했다. 아마 아침에 출근해 전화를 받고 건강한 아버지가 돌아가실 리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착오가 생겼거나 납득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추측했을 것이다. 한달음에 달려올 때까지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처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인과관계를 듣자마자, 모든 것을 놓고 통곡을 터뜨린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사망한 나머지 경위를 가족에게 설명했다. 환자가 장례식장으로 떠나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사인은 명백한 외인사였다. 나는 사망진단서를 쓰고 퇴근했고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러 갔다.

집으로 가는 길, 손에서 스마트폰이 빠져나가는 순간을 생각했다. 그것은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초인적 의지로 정신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이성을 지키려는 용기는 얼마나 커다란 것일까. 죽음에는 이길 수 없더라도 억울함에는 맞서보겠다는 생각이었을까. 인간은 모든 것과 맞설 수 있는 강인한 존재니까. 하지만 운명에 항거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마지막 발자국이 사다리의 중심을 무너뜨린 순간 운명은 정해졌다. 그가 어떤 결심, 어떤 의지로 달려왔든,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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