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5] 장마에 활짝 열린 숭례문
장마철이다. 비와 무더위가 연일 이어진다. 올해 장마가 유난하다는데, 집 마당에서 서두르며 어설피 한 비설거지가 영 마땅치 않다. ‘칠 년 가뭄에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옛말이 있는데 가뭄보다 장마 피해가 더 두렵다. 그래서 그러는지 장마를 ‘고통스러운 비, 고우(苦雨)’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장마가 순하게 지나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 사대문에서 비를 멈추게 해 달라는 기청제(祈晴祭)도 지냈다. 음의 기운이 넘치는 장마 땐 남대문인 숭례문을 활짝 열고 북대문인 숙정문을 폐쇄했다. 남쪽에서 양의 기운을 들여오고 북쪽의 음 기운을 막아 음양의 조화를 맞추고 가뭄엔 정반대로 했다.
장마에 활짝 열려 있는 숭례문은 여전히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위풍당당하다. 비오는 날 풍경 속에서 도심의 전경과 소음을 휘두르고 투두둑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도 귀하다. 숭례문은 온갖 사연을 들여보내고 내주며 역사의 순간을 마주한 채 별칭인 남대문으로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 1398년에 완공되었고 세종과 성종 때 크게 개건되면서 전해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들어 좌우 성곽이 해체되어 성문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전쟁으로 풍파를 겪다가, 2008년에는 어이없는 방화로 활활 타 부분 소실되었다.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2013년 5년에 걸쳐 복원되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했다. 경복궁 낙서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시련을 겪은 뒤 더 강해지는 것처럼, 귀중한 유산을 잘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고, 이제는 국가유산 현장에서 미리미리 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영영 소를 키울 수 없다.
장맛비 걷히면 햇살과 바람이 문을 지나며, 비를 부르는 이름도 고우에서 단비로 바뀔 것이다. 장마를 지나는 사이에 비가 좀 순해지면 마당도 다시 손봐야겠다. 그러고는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며 숭례문을 지나 고궁으로 우중 산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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