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형사재판 13건 중 11건 운전자 유죄…유무죄 판단 가른 건 ‘브레이크 작동 여부’
사고기록장치 데이터 등 분석
제동 시도 미확인 땐 ‘유죄’
돌발 상황, 제동등 켜졌을 땐
‘멈추려는 노력’ 무죄 근거로
9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시청역 앞 차량 돌진사고의 가해 운전자가 급발진을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급발진 사건에 관한 법원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실제 급발진이 사고 원인인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지만 급발진이 맞다 하더라도 운전자 책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대체로 제동장치 작동 여부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3일 경향신문이 대법원 인터넷 판결서 열람 시스템을 통해 2021년 4월부터 지난 4월까지 약 3년 동안 전국 법원에서 선고가 확정된 차량결함에 의한 급발진 형사 재판 13건을 살펴봤더니 유죄 판결이 11건, 무죄는 2건이었다.
차량결함으로 일어난 급발진이라고 주장한 사고 중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은 제동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판단 근거가 됐다. 차량결함에 따른 급발진이라면 운전자가 정차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지난해 10월 청주지법 충주지원 판결을 보면 피해자 2명이 사망한 급발진 주장 사고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금고 4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사고 전까지 가해 차량의 제동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사고 지점에 이르기까지 제동등이 켜지지 않았으며, 제동과 가속 작동부에 결함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고 이유였다.
사고 기록이 담긴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도 법원 판단에 주요 근거로 작용한다. 청주지법의 2022년 7월 선고 내용을 보면, 피해자 1명이 사망한 사고에서 운전자는 차량결함에 의한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EDR 데이터를 근거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기록이 없다며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반면 차량결함에 의한 급발진 주장을 배척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
2022년 1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1명을 숨지게 한 급발진 주장 사고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제동등이 켜진 모습을 봤을 때 차량을 멈추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또 운전자가 1991년 면허 취득 후 교통사고 처벌 전력이 없는 점, 사고 지점에 오기 전까지 비정상적인 운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2022년 11월 제주지법이 무죄를 선고한 사건에서는 첫 충돌 직전 차량 운전자가 “어우” “어? 뭐야” 등 소리를 내 의도와 달리 운행이 시작됐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고, 가속 후 정차할 때까지 20초 넘는 시간 동안 조향장치는 제대로 작동하면서 제동장치 조작을 못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운전자가 형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추후 복잡한 민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형사 재판에서 급발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 선고를 해도, 민사 재판에서는 원고가 급발진이 일어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형사 책임을 피한 운전자 대신 차량 제조사가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생긴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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