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은 더 큰 미움을 불러오는데

이유진 기자 2024. 7. 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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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김금숙 작가가 내놓은 평화·반전·반핵의 그래픽노블 <내 친구 김정은>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하비상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가 평화·반전·반핵의 그래픽노블 <내 친구 김정은>(이숲 펴냄)을 내놓았다.

김 작가는 북한과 가까운 인천 강화도에서 프랑스인 남편,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산다. 허구한 날 포격 연습을 하는 강화도에서 반려견 당근이는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무서워 벌벌 떤다. 세상이 조용해지면 당근이도 평온을 찾는다.

전쟁이 날까봐 불안에 떨며 대피 시설을 확인하던 저자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북한을 알아야 하고, 조선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소문해 남북관계에 정통한 언론인, 전문가, 탈북 여성,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을 만난다.

평양에서 7년 동안 거주하고 한국에서 20년을 산,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친구였다는 한 프랑스인은 작가와 인터뷰하면서도 주위를 맴도는 국가정보원의 시선을 의식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작가와의 만남은 피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제 옛날 같은 대화판이 복원되기는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저자가 국지전 가능성을 우려하자 “불안한 평화라도 지속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책 마지막 부분은 2023년 9월 저자의 콜롬비아 방문에 대해 다룬다. 그곳에서 작가는 6·25 때 가난 때문에 콜롬비아 군인을 따라 고국을 떠났던 한국인 꼬마 ‘페피노’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한국말까지 잊어버린 채 늙어버린 페피노는 46년 만에 어렵사리 한국을 방문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한반도 분단과 전쟁의 유령처럼 작가 앞에 나타난 꼬마 페피노는 한국인의 분신과도 같다.

어린 시절 ‘뿔 달린 공산당’을 배우고 반공 포스터를 그려내던 아이는 프랑스 유학 시절 ‘남이냐 북이냐’를 묻는 말에 시달렸다. 이제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저자는 군사 훈련이 이어지는 곳에서 살며 북녘이 빤히 보이는 교동도를 찾는다. 물 빠지면 걸어서 고작 30분 거리인 곳에 서서 “언제 어느 순간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느낀다.

“김정은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고 남측은 북한의 도발에 몇십 배로 응징하겠단다.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낳고 혐오는 더 큰 혐오를 낳고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을 뿐. 일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사랑만 해도, 아름다움만 봐도 아쉬운 인생.”

평화만 말하기에도 짧은 역사,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가장 긴요한 책. 292쪽, 2만5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잔인한 낙관

로런 벌랜트 지음, 박미선·윤조원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3만5천원

우리는 왜 불특정한 미래에 기꺼이 투자하고 환상을 유지하는가? ‘좋은 삶’에 대한 애착은 정치적 힘을 부식시킨다고 본 페미니스트 이론가 로런 벌랜트(1957~2021)의 책. 그는 정동이 공적 영역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특유의 길고 난해한 문장을 아름답고 정확한 우리말로 바꾸는 데만 6년이 걸렸는데, 번역서에 담긴 공력이 놀랍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9천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이 쓴 6년 만의 단독 저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2020년께부터 작가, 공연창작자로 살아온 저자는 여러 공연에서 배우와 무용수로 참여했다. 창작자이자 몸의 연구자로서 춤에 관한 개인적 경험과 춤의 역사를 통해 차별과 평등의 문제를 다뤘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공동체에 관한 놀라운 발견.

불평등 이데올로기

조돈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만3천원

한국인은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가? ‘(특히) 젊은 세대의 공정 민감성이 과도하다’는 통념에 기인한 질문들에 원로 사회학자 조돈문이 데이터로 답한다. 저자는 지배계급 이데올로기가 불평등을 공정성으로 정당화하면서, 상반된 정부가 서로 다른 공정성 개념을 동원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음을 짚어낸다.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

배우성 지음, 푸른역사 펴냄, 3만7900원

‘중화’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역사의 찌꺼기인가. 20세기 후반 한국 사학사는 의병운동을 한 조선의 선비 정신에서 ‘중화’를 찾기도 했다. 사대주의와 선비 정신이 ‘중화’를 둘러싸고 경합한다. 역사학자 배우성은 사대와 선비의 틀을 넘어서 ‘중화’를 해석한다. ‘중화’의 의미를 열어놓자 보이지 않았던 역사의 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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