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초속 11.2㎞]투수 출신 감독이 사라지고 있다
흔히 ‘투수 놀음’이라고 불리는 야구
김인식·선동열 등 감독으로도 명성
지금은 팀 전체 아우르는 능력 중요
혼자 쥐고 흔드는 리더십 성공 못해
프로야구 KT 이강철 감독이 최근 “고민이 생겼다”며 농담했다. 6일 인천 랜더스필드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투수코치가 없다는 얘기였다. 올스타전은 각 5개 팀으로 나눠 치르고, 감독들이 코치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준우승한 이강철 감독은 드림 올스타 감독이다. 드림 올스타 나머지 감독 중에 투수 출신이 없다. 두산 이승엽 감독과 SSG 이숭용 감독은 1루수 출신, 삼성 박진만 감독은 유격수 출신이고, 롯데 김태형 감독은 포수 출신이다.
이강철 감독은 “그나마 우리 팀에는 나라도 있지, 저쪽은 아무도 없다”며 웃었다. 나눔 올스타에는 LG 염경엽 감독(유격수), KIA 이범호 감독, 키움은홍원기 감독(이상 3루수), 한화 김경문 감독, NC 강인권 감독(이상 포수) 등으로 투수 출신이 없다.
KBO리그에는 전통적으로 투수 출신 명감독이 많았다.
예능프로그램의 구단 최강 몬스터즈의 김성근 감독은 잘 알려진 투수 출신이다. ‘국민 감독’ 수식어를 얻은 김인식 감독, ‘국보 투수’였던 선동열 감독 등도 내로라하는 투수 출신이다. 원로 중에 투수 출신 감독이 많았고 21세기 들어서도 한 시즌 2~3명 정도는 투수 출신 감독들이 있었다. 지난 시즌에도 이강철, 김원형(SSG), 최원호(한화) 등 3명이었는데 시즌 뒤 김원형 감독, 시즌 중반 최원호 감독이 물러나면서 지금은 1명밖에 남지 않았다.
투수 출신 감독의 감소는 우연일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일까?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 불린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경기가 시작되고, 플레이가 이어진다. 타자는 한 경기에 4~5타석 정도 들어서는 반면, 선발 투수는 100개 언저리의 공을 던진다. 야구는 구기 종목이고, 공을 가장 많이 다루는 포지션이 투수다. 투수가 잘 던지면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투수가 못 던지면 패배가 가까워진다. 야구는 단체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특정 포지션(투수)에 ‘승리’와 ‘패배’라는 공식 기록을 남기는 종목이다.
투수가 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포지션이라 여겨지다보니, 명투수 출신 감독이 많았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야구 해봤어?’라는 말이 ‘전문성’을 상징하던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특수 포지션’의 경험이 배타적으로 이뤄지고, 이에 대한 이해 역시 경험과 감에 의존하던 시대였다. 저돌적 산업화의 경험이 ‘군사부일체’로 대표되는 유교문화와 결합해 강력한 리더십이 덕목으로 여겨졌다. 여전히 ‘감독=스승’ 공식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몇몇 팀은 아직도 스승의날 감독에게 선물을 한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고, 팀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더욱 중요해졌다. 게다가 측정 기술의 발전과 데이터 분석의 강화는 ‘경험의 배타성’을 약화시켰다. 이제는 ‘해본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눈보다 더 정확한 기계의 측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 분석이 더욱 효과적이다.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바뀌고 있고, 야구는 리더십의 변화를 증명하는 중이다.
혼자서 경기를 좌우하던 경험보다 팀 전체와 함께 움직이고 협업하던 경험이 감독에는 더 잘 어울린다. 그래서 원래도 투수와 야수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포수 출신 감독이 많았다. 미국야구통계학회(SABR)의 분석에 따르면 1901~1981년 메이저리그 감독 338명 중 포수 출신이 73명(21.6%)으로 가장 많았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투수 출신 감독은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다. KBO리그에 투수 출신 감독이 1명 남았듯, 올 시즌 메이저리그 감독 30명 중 투수 출신 감독은 콜로라도 버드 블랙 감독과 밀워키 팻 머피 감독 둘뿐이다. 경기를 쥐고 흔들어본 경험과 감보다 팀을 하나로 묶고 협업이 익숙한 포지션의 경험과 감이 더 효과적인 리더십을 지닌다. 올 시즌 ML 감독 중 13명이 포수 출신, 내야수 출신이 9명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 ‘혼자서 쥐고 흔드는 상명하복의 동일체 리더십’으로는 되는 것도 없고, 나아가기도 어렵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이다. 앞서 SABR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루수 출신 감독의 평균 승률이 0.517로 가장 높았고 2위는 1루수(0.508)였다. 두 포지션 모두 화려함과 거리가 있다. 2루수는 백업과 커버 등으로 제일 바쁜 내야수고, 1루수는 악송구도 열심히 받아줘야 하는 자리다.
이용균 스포츠부장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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