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 주라” 구호…미래 세대 향한 애정 담았던 의도는 기억되길[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기자 2024. 7. 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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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산 사직구장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늘 울려 퍼지는 부산 사직야구장, 그러나 1992년에 이루었던 갈매기의 꿈은 32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성우 제공
19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국어
유독 이 지역엔 ‘ㅆ’ 하나가 없고
‘으·어’ 구분도 안 돼 당황스럽다
“마, 마, 마”는 “야 임마, 안 돼, 확”
거부감·편견 걷어내면 되레 친근
틀린 말은 없다, 다른 말일 뿐이다
외래어·세대 간의 ‘언어 충돌’은
“아 주라”의 감성으로 풀면 된다
미래 말의 결정권…“마, 아 주라”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 말 익히고
다음 세대는 앞 세대 말 알아듣고
서로가 듣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 이해하면 된다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힘찬 함성 내뿜으며 내 마음을 울렸던 그 사직야구장은 참 조금도 안 변했구나.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떠올리며 부산에 갔다. 해운대와 광안리 바닷가, 국제시장과 범일동의 재봉틀 거리, 밀면과 돼지국밥, 그리고 3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대학 친구 등 부산에 갈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직야구장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봉다리 응원’과 때가 되면 울려 퍼지는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시시때때로 울려 퍼지는 “마!”와 “아 주라!” 소리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이다.

야구는 좋아하되 야구를 보지 않게 된 결정적 이유는 마리화나, 아니 ‘마리한화’를 끊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팽팽하게 진행되는 경기 자체의 매력을 즐겨야 한다지만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 운동경기이다. 크게 이기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한번 지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패배를, 감독과 선수를 수없이 바꾸었지만 백약이 무효인 것을 보며 “뭐여~~~~”가 반복되다 결국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부산은 다르다. 1992년 이후 32년째 우승을 못했지만, ‘꼴데’라고 놀림을 당하긴 하지만 부산의 야구 사랑은 진심이다. 억센 부산 사투리에 실리는 응원의 말 또한 진심이다.

부산 사투리의 날카로운 추억

“식사하셨는교?” 자갈치시장 초입의 포장마차 앞에서 낯익은 얼굴이 묻는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50대 남자의 정감 있는 물음 때문에 낯익게 느껴졌을 뿐이다. 생뚱맞은 질문에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살펴 가이소, 저녁도 잘 챙겨 드이소”라고 하며 바로 다음 목표물을 찾는다. 포장마차의 호객꾼이지만 정감이 넘친다. “니 멫살이고?” 아버지 손을 잡고 전철을 탄 유치원 사내아이를 무릎에 앉히며 묻는다. “아빠 닮아가 이리 잘생깄나 보네.” 수줍은 아이가 대답은 않고 아빠 눈치만 보자 평범한 외모의 아빠마저 장동건급으로 만든다. 모두가 정답다.

그러나 부산 사투리에 대한 추억은 날카롭기만 하다. 일곱 살에 고향 충청도를 떠나 부산에서 3년 살다 찾아온 친구의 입에서 나온 “낸 부산 사람인기라”라는 말에 놀랐었다. 유난히 부산 출신이 많았던 대학 시절, ‘쌀’과 ‘살’을 구별하지 못하는 친구,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불러주겠다면서 “그리에 가로덩불이…”로 시작하는 선배, 국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관세청’을 무심결에 ‘간세층’으로 쓰는 후배 때문이었다. 한반도 모든 지역의 말에서 자음이 19개인데 유독 이 지역만 ‘ㅆ’이 하나 없다. ‘에/애’는 고사하고 ‘으/어’도 구별하지 못하니 모음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관광’을 ‘간강’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와이에스(YS)’마저 ‘아이에스’라 발음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의 말이 기억 속에 날카롭게 새겨졌다.

영화 <친구>는 부산말에 대한 인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힘센 정치인, 성공한 사업가 역할이지만 조연에 불과하던 이들의 부산말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저 그런 사투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잘생긴 데다 의리로 똘똘 뭉친 멋진 청년들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부산말을 여과 없이 뿜어내는 영화의 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이 땅의 모든 말이 ‘틀린 말’이 아닌 조금씩 ‘다른 말’임을 알아가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리기도 했다. 거부감과 편견을 걷어내면 친근함이 넘치는 말이다. 멋진 사내가 하면 힘이 있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하면 한없이 귀엽게 느껴지는 말이다.

모음의 숫자가 부족한 것은 성조로 채운다. ‘2의 e제곱’과 ‘e의 2제곱’이 발음은 같더라도 높낮이로 구별되니 표준어에는 없는 장점이다. 높고, 낮고, 올라가는 세 개의 성조로 모음을 구별하면 모음이 세 배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방송과 교육을 통해, 그리고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일찍부터 ‘ㅅ’과 ‘ㅆ’의 발음을 배우고 ‘으/어’의 구별을 배우니 놀림감이 될 이유도 없다. 나아가 ‘아이에스’ 대통령을 접한 이후의 세대는 ‘관광’도 제대로 발음한다. 이쯤 되면 ‘놀림’이 될 만한 요소는 모두 사라졌으니 ‘멋짐’과 ‘잘남’만 남는다. 물론 그렇게 듣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감어린 부산 사투리가 넘쳐나는 자갈치 시장. 연합뉴스

마! 마! 마!

야구하기 딱 좋은 날이다. ‘부산 갈매기’의 상태 팀은 인천의 ‘연안부두’ 팀이다. 흥행을 위해 가져다 붙였겠지만 일명 ‘항구시리즈’다. 항구도시답게 도시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노래가 있으니 응원가의 맞대결도 볼만하다. 고향 팀 응원을 포기했으니 사는 곳의 팀이라도 응원해야겠지만 오늘은 그래도 갈매기 팀 쪽에 있어야 할 듯하다. 초반부터 난타전이다. 시작하자마자 2점을 빼앗겼지만 바로 4점을 내고 그다음 회에 1점을 빼앗겼지만 다시 4점을 달아났다. 6회가 끝나니 10-7로 3점을 앞서고 있으나 늘 그렇듯이 ‘야구 몰라요’다.

“마! 마! 마!” 갈매기의 공격 상황, 타자가 1루에 나가자 발 빠른 주자의 도루를 막기 위한 투수의 견제구 때문에 경기가 조금 늘어진다. 그때 응원단장의 신호에 따라 울려 퍼지는 소리다. 저건 틀림없이 ‘야 인마!’하는 욕이다. “니 그라문 안 데”란 말이 나오거나 손바닥으로 따귀를 날릴 동작을 하며 ‘확’이란 말이 뒤따를 듯한 그런 욕이다. 견제구를 견제하고자 하는 구호는 구단마다 하나씩 갖춰놓고 있다. 서울의 세 구단은 ‘떽, 야, 뭐야’를 쓰고 인천의 구단은 ‘쩔어’를 쓴다. 수원의 ‘왓’, 대전의 ‘뭐여’, 대구의 ‘뭐꼬’, 광주의 ‘아야’, 창원의 ‘쫌’도 같은 용도로 상대에 대한 견제와 자신의 팀에 대한 응원을 겸하고 있다.

이런 구호는 각 지역의 말과 정서를 꽤나 잘 반영하고 있다. ‘아야’는 하대할 만한 대상에 대한 시비와 책망을 담은 말로 ‘날 새겄다’와 짝을 이룬다. ‘떽, 야’에서는 아이들을 몰아세우며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고, ‘쫌’은 짜증 섞인 억양 때문에 “그러지 마!”란 말이 절로 들린다. ‘뭐여, 뭐꼬, 뭐야, 왓’은 물음표로 불만을 표시한다. ‘쩔어’는 구호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지만 ‘그러면 안 되지’와 호응이 좀 애매하다. 각각의 말이 선명한 구호와 사투리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대전의 ‘뭐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지게 해야 상대방의 짜증을 유도해낼 수 있고 인천의 ‘쩔어’는 진짜로 쩔기 전에 다른 구호가 필요할 듯하다.

프로 스포츠에서 특정 지역을 연고로 정하는 것은 흥행을 위한 일반화된 전략이다. 프로야구 또한 출범 때부터 지역 연고제가 뿌리를 내려 큰 성공을 거둬왔다. 그러나 지역 연고제가 지역감정과 엉켜 때로는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구호는 투수를 견제하기 위한 말이 아닌 이런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한 말이 될 필요도 있다. 때로는 ‘뭐여, 뭐꼬, 뭐야’를 외치며 그들의 행태에 의문을 품고, ‘마, 쫌, 야, 아야’로 화를 내야 한다.

‘아 주라!’와 미래의 말

22개의 안타를 주고받았지만 아쉽게도 홈런은 없었다. 홈런이 없으니 홈런이 나올 때마다 장난스레 울려 퍼졌던 “아 주라!”란 소리도 없다. ‘아’는 ‘아이’의 부산말이니 ‘아 주라’는 ‘아이한테 줘라’라는 말이다. 홈런 볼을 어른이 주우면 욕심을 내서 챙기기보다는 아이한테 추억을 선물하라는 의미이다. 과거의 사직야구장,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펼쳐지는 갈매기 팀의 경기가 있을 때면 늘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그러나 본래의 의도와 달리 악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사라진 문화가 되어버려 아쉽다.

비록 ‘아 주라’ 문화는 사라졌지만 이 구호가 지향하던 바는 기억하고 구현할 방법을 찾아볼 필요는 있다. ‘아 주라’는 프로야구의 미래에 대한 구호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애정을 담은 구호였다. 새로운 팬의 유입이 없는 한 프로야구는 정체될 수밖에 없으니 어린 관람객에게 추억을 심어주어 야구장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은 필수다. 꼭 야구가 아니더라도 어린 세대가 무엇에든 흥미를 가지고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야구문화나 용어 모든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담장을 넘어가는 공을 ‘호무랑’으로 알고 있던 세대의 뒤를 ‘홈런’이라 말하는 세대가 이었다. ‘랑데부 홈런’과 ‘그라운드 홈런’은 ‘본토 야구’를 ‘원어’ 중계로 본 세대에 의해 ‘백투백 홈런(Back to Back Home run)’과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Inside the Park)’으로 대체되고 있다. ‘포볼’과 ‘데드볼’도 ‘베이스 온 볼스(Base on Balls)’와 ‘히트 바이 피치(Hit by Pitch)’로 바뀌고 있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엉터리 영어는 아주 많이 사라졌다. 외래어나 외국어 대신 고유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인 ‘볼 넷’과 ‘몸에 맞는 공’도 점차 밀려나는 추세이다.

야구장에서의 이런 용어 변화를 두고 저마다, 특히 세대마다 할 말이 많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믿는 이, 본토의 용어와 발음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이, 우리말을 최대한 살려 써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저마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본어를 밀어낸 자리에 영어가 들어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말을 쓰는 것은 좋지만 억지스럽거나 너무 길게 느껴지는 걸 굳이 써야 할까? 그 결과 ‘볼 넷’과 같은 고약한 혼종이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일까? 이런 주장은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틀린 것이고, 관대한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맞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아 주라’의 감성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의 언어는 과거의 연장이고 미래의 언어는 현재의 노력에 따른 결과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변화는 늘 다음 세대에 의해 결정되어왔다. ‘호무랑’을 ‘홈런’이라고 고친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이었다. 그 세대에게 ‘데드볼’과 ‘포볼’은 익숙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대의 기준으로는 옳지 않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세대가 주류 세대가 되고 자연스럽게 ‘히트 바이 피치’와 ‘베이스 온 볼스’가 대세가 된다.

그러니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의 말을 배우면 된다.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의 말을 들을 줄 알면 된다. 서로가 듣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만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 된다. “아 주라, 미래의 말에 대한 결정권을!”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 “배워라, 그 아들의 말을!” 그래야 야구든 뭐든 함께 즐길 수 있다.

필자 한성우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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