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노동당, 총선 뒤 ‘진짜 시험’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한겨레 2024. 7. 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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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선거와 프랑스 조기 총선에 가려졌지만, 영국도 4일 총선을 치른다.

영국 총선이 관심 밖인 까닭은 이미 결과가 빤해서다.

노동당은 프랑스 좌파가 조기 총선에서 약속한 부자 증세와는 달리 조세정책을 크게 손보지 않겠다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압도적 의석을 지닌 노동당 정부가 몇 주, 몇 달의 시간 지평 안에 과거와는 달라진 현실을 실감하게 하지 못한다면, 기어코 패라지가 '영국의 르펜'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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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4일(현지시각)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영국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 지난 6월17일 영국 남부 사우샘프턴에서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사우샘프턴/AP 연합뉴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미국 대통령선거와 프랑스 조기 총선에 가려졌지만, 영국도 4일 총선을 치른다. 영국 총선이 관심 밖인 까닭은 이미 결과가 빤해서다.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노동당 압승을 예고한다.

그럴 만도 하다. 2010년대에 보수당 집권을 연장시켰던 요인들이 이제는 족쇄가 되어 있다. 2015년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보수당은 갑자기 좌파색이 뚜렷해진 야당을 상대하게 됐다. 이때 보수당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브렉시트’를 외치며 극우 포퓰리즘을 수용한 보리스 존슨의 모험적 노선이었다. 존슨은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의 승리를 이끌었고, 2019년에 총리가 되고는 1년 뒤 조기 총선 승리를 통해 노동당의 코빈 시대를 끝장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리에 여전히 집착하면서 브렉시트라는 회심의 카드를 이미 써버린 정당에 남은 정책 수단은 끝없는 감세 공약뿐이었다. 2022년에 존슨을 이어 총리가 된 리즈 트러스는 취임하자마자 인플레이션 대책이라며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재정위기를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나라가 세수를 대폭 줄이겠다고 하자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파운드화가 폭락했다. 트러스는 같은 당의 리시 수낙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면서, 취임 45일 만의 사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파동 이후 노동당은 줄곧 보수당의 두 배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새 대표 키어 스타머는 보는 이가 다 지루해질 만큼 조심스럽게 당을 이끌었다. 스타머가 코빈 같은 원칙 있는 사회주의자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10년 넘게 지속된 야당 신세를 끝내는 데 당의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 염원을 집약한 공식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기에 승자가 된 중간계급과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계급의 연합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노동당의 이번 총선 공약은 이 노선의 논리적 귀결이다. 노동당은 프랑스 좌파가 조기 총선에서 약속한 부자 증세와는 달리 조세정책을 크게 손보지 않겠다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제3의 길’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 투자 명목으로 교육 서비스를 확대하고 국민보건서비스(NHS)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렇다고 단순히 토니 블레어 시절로 돌아갔다고만 볼 수는 없다. 코빈 시기에 도입한 탈신자유주의 정책 중 일부를 계승하기도 했다. 국영 에너지회사를 설립해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이끌고, 이런 녹색공공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국부펀드를 신설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재정 확대 가능성은 극구 부인하면서도 경제 영역에서 과거보다 국가 개입을 늘리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차기 노동당 정부가 펼칠 이런 정책조합은 과연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 비슷한 정책을 이미 실행한 미국 바이든 정부가 직면한 현실을 보면, 이 물음의 답이 썩 긍정적일 것 같지는 않다. 공공이 주도하는 장기 투자는 분명히 의미가 있겠지만, 그런 장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인구가 이미 너무 많이 양산돼 있다.

더구나 지금 영국에서도 극우파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개혁당이 보수당의 위기를 기회 삼아 지지율을 15% 이상으로 늘린 상태다. 압도적 의석을 지닌 노동당 정부가 몇 주, 몇 달의 시간 지평 안에 과거와는 달라진 현실을 실감하게 하지 못한다면, 기어코 패라지가 ‘영국의 르펜’이 되고 말 것이다. 노동당에게 진정한 시험은 총선 압승 다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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