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는 도시민이, 피해는 농민이… 커지는 법안 개선 목소리

김재근 선임기자 2024. 7. 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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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희망이다] 농지법 개정 3년차
땅 잘 팔리지도 않는데 농지위까지 거래 규제 불만 증폭
시대 변화 발맞춰 주말·체험농장 등 과도한 제도 개선을
2021년 개정된 농지법이 농지의 거래와 활용을 지나치게 규제,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법률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김재근 선임기자

정부·여당과 정치권에서 농지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4.11총선 때 물가와 정권심판론이 선거판을 지배했지만 농촌지역에서는 농지법을 고쳐달라는 요구가 분출했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땅 투기 사태의 수습책으로 농지법을 개정한지 3년째가 되면서 농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농지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등 농지 거래가 힘들어지고, 농업진흥지역 규제가 강화돼 주말·체험농장이나 치유농업을 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귀농을 희망하는 청년층이나 베이붐 세대가 농지를 구입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수도권보다 오히려 농촌이 더 고통을 받는 상황이다. 투기는 도시민들이 하고 피해는 농민들이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땅 팔리지도 않는데, 농지위까지 규제 가세

농촌은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소득감소, 농업 기피 등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영농인구의 평균 연령이 68세에 이르고, 농가인구가 1970년에는 전체 인구(3144만명) 중 1442만명(45.9%)이었으나 2023년에는 209만명(4.0%)으로 급감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 비중은 1970년 36.5%에서 2023년에는 1.7%로 크게 줄어들었다.

농촌인구 감소와 농업 환경 변화에 걸맞게 농지법을 크게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2021년의 농지법 개정이 시대를 거슬러 역주행했다는 것이다. 너무 자주 고치다 보니 복잡하고 어려워 범법자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농민들의 불만이 큰 것 중의 하나가 농지위원회라는 존재다.

현재 농지를 거래하려면 농지위원회의 농지취득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2002년에 폐지됐던 옛 제도를 LH 사태 이후 부활한 것이다. 농지위원회에 농업경영계획서를 내고 4-14일 기다려야 한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위원회 따라 농취증 발급 여부도 들쭉날쭉하다.

고령농들은 "농사를 질 수 없어 팔려고 해도 찾는 사람이 없다"며 "사유재산인 내 땅을 내가 파는데 왜 농지위원회에서 가부를 결정하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농지위원회 도입 이후 2023년 전국적으로 농지 거래량이 전년보다 24% 줄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의 재산 가치가 떨어지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 도시민이나 귀농·귀촌 희망자들의 농지 구입도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 지난 2023년 9월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이 농지위원회 폐지를 골자로 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농업진흥지역에서 주말·체험 영농 등을 금한 것도 농지의 활용을 막은 과도한 규제로 손꼽힌다. 농업진흥지역 외의 땅도 이전과 달리 농지취득자격증명서는 물론 매입자의 직업과 거리 등을 적은 농업경영계획서와 증빙서류까지 제출해야 한다.

□ 주말·체험·취미영농 막는 것은 시대착오적

이 조항과 관련 지난 6월 송석준 의원(경기 이천)이 농업진흥지역에서도 주말·체험농장과 치유농업용 농지를 살 수 있도록 농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농지를 자경(스스로 농사를 짓는 것)하지 않는 데 대한 처벌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된 농지법은 시장과 군수·구청장이 매년 1회 이상 농지이용실태를 조사하여 자경하지 않을 경우 1년 이내 농지를 처분하라고 통보하도록 했다. 처분하지 않으면 개별공시지가 또는 감정가의 25%를 이행강제금으로 매년 1회씩 부과하게 된다. 산술적으로 4년간 이행 강제금을 내면 땅이 모두 날아가는 셈이다.

이 조항도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고령농들이 경사가 심한 산골의 밭이나 진출입이 불편한 영농여건불리 농지(한계농지)를 방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타지나 해외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휴경에 따른 녹지 제공과 지력 유지 및 회복 기능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1세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요즘 젊은 세대는 농촌 거주와 영농을 선호하지 않는다. 농사로 돈을 벌기도 힘들 뿐 아니라 주거나 문화·교육·의료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농부 중에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

1주일에 5일은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고 토·일요일 이틀은 시골에서 거주하는 5도 2촌도 유행하고 있다. 휴식이나 주말·체험·취미 영농을 위해 한시적으로 농촌에 머무르는 생활인구도 중요해졌다. 이들이 쉽게 농지를 매입하도록 하여 귀농으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소멸위기의 지역에 한해 젊은 세대나 귀농인이 한계농지에 치유와 요양 농장, 민박, 캠핑, 종교시설, 산림욕 등을 운영하게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세법 적용의 기준이 되는 '재촌자경'의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세법에서 '재촌'은 땅 주인이 토지 소재지에 거주하거나, 토지 소재지와 연접하고 있는 시·군·구, 또는 토지 소재지로부터 30km 안에 살아야 인정을 받는다. '자경'은 농지 면적의 1/2 이상을 경작하고 상시적으로 농업에 종사해야 한다. 이 두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취득세와 양도세를 감면해준다. 요즘은 교통이 발달, 30km가 넘어도 출퇴근 영농이 가능한 만큼 훨씬 넓히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농업환경의 변화에 걸맞게 농지의 이용과 활용 범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김재근 선임기자

□ 시대 변화 걸맞게 경자유전, 재촌자경 개선을

현행 농지법은 21세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 원칙으로 자작농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농지의 규모화와 산업농 육성에는 실패했다. 소작농을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임대를 금지함으로써 기업농의 등장과 토지의 다양한 활용을 어렵도록 했다. 주말농장과 체험농장, 치유농업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도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손꼽힌다.

사유재산인 농지에 지나치게 공공성을 부여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2019~2021 평균 식량자급률은 47.7%, 곡물자급률은 22.2%였다. 안보 차원에서 먹거리 자급률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지만 가난한 농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현행 농지법은 농지의 거래와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함으로써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재산가치 하락을 부추겨 농민은 빈곤층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농지의 공공성을 유지하려면 주곡생산에 꼭 필요한 곳은 보전하되 나머지 농지는 활용성을 높여주는 게 옳다.

규제가 일방적 획일적인 것도 큰 문제다. 투기가 일어나는 곳은 수도권과 대도시, 개발 수요가 있는 곳에 한정된다. LH사태가 일어난 곳도 수도권과 지방의 일각에 불과했지만 즉흥적이고 과도한 규제책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밀어부쳤다. 투기가 일상화된 수도권과 땅을 내놓아봐야 쳐다보지도 않는 소멸위기의 농어촌에 동일하게 적용한 것은 정치와 행정의 폭력이라고 할 만하다. 규제의 강도를 지역에 따라 3-4단계로 구분,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경자유전'과 '재촌자경'은 농경시대의 논리이다. 지방은 지금 어린 아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소멸위기에 처해있다. 농지의 거래와 활용을 억누를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기준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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