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부자세가 불공평? 누굴 위해 공평해야 할까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7. 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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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부자세 논쟁 2편 현실론과 함정
상속세 폐지한 인도 증시보다
韓 증시 부의 집중이 더 심해
재벌체제 이론적 논의 더 필요
반대론자 “재산세 폐지국가 많고
소득세가 더 평등한 제도” 주장
2021년 네덜란드 대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부유세의 취지가 아닌 과세 기준이었다.[사진=연합뉴스]

# G20은 최근 '초부자세 논쟁'을 펼치고 있다. 부의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으로 초부자의 재산에 과세를 매기는 것을 논의 중이다. 우리나라는 반대다. 현 정부와 여권은 상속세 인하를 밀어붙이면서 G20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 물론 초부자세의 정당성이 입증된 건 아니다. G20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과세 체제를 소득세에서 재산세로 바꾸는 논의까지 뒷전으로 밀어놔선 곤란하다. 초부자세 논쟁 2편 현실론과 함정이다.

미국 매체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는 지난 10년간 명단의 길이가 몇배 길어졌다. 상속이나 배당 등에 부과하는 자본 과세가 약해지고, 기업 가치는 증가해서다. 포브스는 2020년 "세계 억만장자 수가 10년간 3배 늘어나 2095명이 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아시아 초부자들이 급증했다. 우리나라 억만장자도 10년간 3배 가까이 늘어난 28명이었다.

■ 한국의 역행=7월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상속세 논란이 뜨거워진 이유는 잡음이 많아서다. 대통령실이 중산층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자면서, 최상위 부자에게 영향을 주는 최고세율을 절반으로 깎아주자고 하는 게 대표적이다.

중산층 세 부담은 공제 한도 조정으로 가능하다. 현재의 경영권 프리미엄보다도 낮게 책정된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3일 발표도 마찬가지다. 잡음을 제거하고 들어보면, 상속세율을 내리자는 얘기는 결국 부의 뼈아픈 양극화를 인정하자는 얘기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부의 집중도는 증시 기준으로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증시에서 4대 재벌 가문이 보유한 기업집단이 전체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일 기준 기업집단 삼성은 전체 시가총액의 38.87%를 차지하고 있다.

SK가 13.86%, LG가 9.10%, 현대자동차가 8.95%다. 부의 불평등이 극심한 인도와 비교해 봐도 우리 증시에서 부의 집중은 두드러진다. 인도 증시에서 타타 등 5대 그룹의 시총 비중은 22.0%다.

공교롭게도 인도는 30년 전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다. 인도는 1985년 최고세율이 85%에 달했던 상속세(Estate duty)를 폐지했는데, 그 부정적 효과가 최근 관측되기 시작했다. 2022~2023년 인도 상위 1% 부자는 국가 전체 소득의 22.6%, 자산의 40.1%를 갖고 있다.

■ 본질과 현실=상속세의 취지는 부가 '대代'란 명분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해 기회의 균등을 이루려는 것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이를 토대로 이뤄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은 형성과 승계 과정에서 여러 초법적 방법을 동원했다.

규제 시스템이라도 탄탄했으면 부의 불편한 승계를 막을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빈약했고 부는 재벌 가문에 쏠렸다. 이는 구조적 문제를 발생시켰고, 우리나라 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고, 여기에 '상속세율 인하'를 곁들였다. 하지만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려면 총수가 자신의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고 싶어야 한다. 상속세 인하론자들은 "총수의 상속세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면, 총수가 그만큼 자신의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쓸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세 부담이 줄어든 총수는 가성비 좋은 승계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굳이 증시를 부양할 필요가 없다.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는 밸류업 프로그램이든 상속세율 인하든 공수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최상위 부자들의 상속세 문제는 지금처럼 정치의 영역에서 논쟁을 펼치기 전에 이론적인 배경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 초부자세 반대론=다시 초부자세를 살펴보자. 미국 등은 G20 차원에서 논의 중인 '초부자세'를 반대하고 있다. 반대론의 핵심은 부유세가 있던 나라들도 이를 폐지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조세재단(Tax Foundation)은 6월 26일 발표한 '부유세의 높은 비용'이라는 보고서에서 초부자 재산세를 반대했다. 조세재단은 "순자산에 재산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콜롬비아,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뿐"이라며 "재산세는 이중과세"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나 사업으로 소득을 올리고, 여기에 걸맞은 세금을 내는데(소득세), 이를 제외하고 축적한 재산에 또다시 과세하는 건 '이중조치'란 거다.

프랑스는 2018년에 자산에 매기는 부유세를 폐지하고, 부동산 보유세로 대체했다. 1981년 도입한 프랑스의 부유세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주식 등 모든 자산의 가치가 130만 유로 이상이면 0.5~1.5% 세율로 부과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핀란드, 아이슬란드, 룩셈부르크, 스웨덴이 부유세를 폐지했다.

초부자세를 반대하는 논거는 또 있다. 법적인 리스크가 많다는 점이다. 조세재단은 2021년 네덜란드 대법원이 부유세가 재산권과 차별 금지를 규정한 유럽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네덜란드는 2017년부터 지분 가치 상승, 이자 소득, 부동산 임대 소득에 부유세를 매겨왔다. 독일에서 재산세가 위헌 판정을 받은 사실도 적시했다.

그런데 네덜란드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부유세의 취지가 아니라 정부가 납세자의 지분 가치 상승에 과세할 때 평균 수익률을 적용하고 실제 수익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2018년 재산세를 위헌으로 판정한 것도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 부과를 목적으로 재산을 평가할 때 1964년의 기준점을 그대로 사용한 게 문제가 됐다. 초부자세에 법적 위험요인이 있다는 근거는 왜곡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대주주의 상속세 할증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초부자세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것이란 주장은 어떨까. 비슷한 재산을 소유한 두 기업가가 있다면, 소득세의 경우 경영실적이 더 좋은 이가 세금을 많이 낸다. 하지만, 초부유세와 같은 재산세는 실적과 무관하게 두 기업가가 비슷한 세금을 내기 때문에 실적이 나쁜 기업가에게 세금 부담이 전가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바로 이게 재산세보다는 소득세가 더 공평하다는 반대론의 근거다.

OECD는 2018년 발표한 'OECD 회원국들의 순자산세 역할과 설계'라는 보고서에서 "부유세는 세금 납부를 이유로 자산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자산에 과세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소득세는 이론적으로 납세자의 자산에 영향을 적게 줘 더 공평하다"고 주장했다. OECD 보고서와 공평이란 관점은 초부자세 논의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시사한다.

결국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부자세 찬반 논의는 소득세 위주의 과세 체제를 재산세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G20의 논의도 여기에 무게가 실려 있다. 상속세 인하에 매몰돼 초부자세를 논의조차 하지 않는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도 이 지점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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