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률 분야에서의 AI 혁신

2024. 7. 3. 18: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손영현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사·한국미래변호사회 법제이사

필자는 4년차 국선 전담 변호사이다. 국선 전담 변호사로 1년에 대략 200건을 처리하고, 지난 3년간 대략 500여건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1년 중 주말과 공휴일이 120일 정도이니, 거의 하루에 한 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물론 자백하고 선처만 구하는 사건이야 법리 검토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지만 대부분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들의 사정을 살피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 모두 다르니, 단순히 대법원 판례만으로 법리를 살펴 개별 피고인에게 법률 조력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국선 변호에 기댈 수밖에 없는 피고인들에게 국선 전담 변호사의 조력이 법률전문가의 유일한 조력이기 때문에 절대 가볍게 살펴볼 수도 없다.

그런데 요즘 법리를 검토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최근 엘박스에서 변호사 가입자들을 상대로 법률 인공지능(AI) 서비스를 베타 버전으로 제공하고 있고, 그 베타 서비스를 사용한 덕분이다. AI가 증거 기록을 요약하거나, 구체적인 사건 내용에 관한 질문을 통해 연관된 하급심 판례를 검색하고 정리하니, 검토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줄어든 시간으로, 내가 담당한 피고인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고, 증거 기록을 한 번이라도 더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아직 AI가 알려준 내용 중에는 '환각 현상'이 있는지 검증해봐야 하지만, 보조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운전으로 보자면, 자율 주행은 안되더라도 좋은 내비게이션 정도는 되니, 초행길 같은 사건에서는 길잡이 노릇 정도는 해주는 듯하다.

물론, AI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최근 김남근 의원실에서 'AI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간담회'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AI가 혐오 발언을 한다거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우리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AI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개별 AI 회사마다 영업비밀에 해당할 수 있으니, 그런 감춰진 정보의 악영향을 미리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특히 내가 주로 담당하는 피고인들은 노숙인이나 발달장애인, 자립준비청년 등으로 사회적 편견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으니, 그들의 사건을 AI가 도와주면서 올바르지 못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AI는 이미 기득권이 된 사회적 편견을 더 공고하게 해주는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도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AI는 마치 스포츠카로 빈부 격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편, 대중교통으로 다수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자동차처럼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다른 것이다.

실제 변호사 업무에서 AI를 사용해 본 동료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방대한 하급심 판례들과 이에 기초한 AI 서비스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이라도 대형 로펌에 못지 않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가능성을 얻는다고 한다. 개인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대형 로펌이 소속 변호사를 통한 리서치나 과거 수행한 사건들로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서로 경쟁하기 어렵곤 한데, 법률분야 전문 AI로 그 간극을 다소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와 비교하자면 보건소 공중보건의도 보건소에서 CT나 MRI같은 의료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될듯하다. 물론 이렇다 하더라도 그 의사 개인의 숙련도나 전문성에 따른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듯이, 법률 AI도 그 자체로 모든 해답인 것은 아니고, 이를 활용하는 변호사의 역량에 따른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례로 AI 사용 교육을 들어보면, AI에게 어떻게 질문(프롬프트)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고 하니, AI를 활용하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즉, 아직 법률분야 AI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서비스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즘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인해 법관이 아닌 AI가 판결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AI는 개별 사건의 특성이나 단순히 통계적인 결론과 다른 특징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이는 AI가 비판적 사고없이 일단은 우리 인간 사회를 학습하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도덕적 소양을 비롯하여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반영할 수 있지만, AI는 예외없는 알고리즘에 기댈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소년재판에서 만난 판사의 말 한마디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나 역시 국선전담변호사로서 법률 AI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