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없이 일방적 부림만 있는 노동은 비기독교적”

강성만 기자 2024. 7. 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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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기독교경제윤리론’ 펴낸 민중신학자 강원돈 교수
강원돈 교수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독교경제윤리론’(동연).

4년 전 한신대에서 정년을 맞은 강원돈 은퇴교수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제안하는 시장경제의 규율방안’이라는 긴 부제를 달아 출간한 책이다. 무려 1200쪽이 넘는 이 벽돌책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개념인 기독교경제윤리에 대한 해설에서 시작해 ‘사회적 가난, 생태계 위기와 금융 수탈’이라는 시장경제체제의 근본 문제를 짚고 나아가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달러 패권 등 세계 금융체제의 문제와 대안을 기술하는 데만 280쪽을 할애했다.

한국 민중신학의 거목인 안병무(1922~96) 교수의 직계 제자로 2세대 민중신학자인 강 교수는 국내 1호 기독교경제윤리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1990년대 초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역사의 종말 이야기까지 나오자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자본주의 문제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본주의 문제 해결과 새로운 사회 형성 원리와 방안을 연구하는 기독교경제윤리의 영토에 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한신대 신학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안병무 교수 권고로 1993년 독일 유학에 나서 5년 만에 루르대 개신교신학부에서 논문 ‘생태학적 노동 개념을 규명하여 경제윤리의 근거를 새롭게 설정함’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그가 3년 집필 끝에 낸 이번 책은 기독교경제윤리를 체계적으로 다룬 국내 첫 저술이며 세계적으로도 세 번째 책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독일 기독교사회주의자 게오르규 뷘쉬가 기독교경제윤리의 원조인데요. 그가 1927년 당시 경제문제를 분석하고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한 책이 이 분야의 첫 저술입니다. 두 번째는 1989년 스위스 사회윤리학자 아르투르 리히가 낸 책이죠. 그리고 35년 만에 제 책이 나왔어요.”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기독교경제윤리론’ 표지.

그는 기독교경제윤리를 두고 “신학적 관점에서 더 많은 선과 정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현실의 경제를 제도적 차원에서 규율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쉽게 말해 “우리 시대 경제 문제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경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누가 얼마만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또 소비할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선과 정의 실현에 실패할 수가 있어요. 이 때문에 경제는 더 많은 선과 정의 실현을 궁리하는 학문인 윤리와 만날 수밖에 없죠. 기독교는 여기서 윤리적 원칙의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책에서 ‘기독교경제윤리 규범’에 근거해 노동과 자본의 관계 민주화, 생태계와 경제계의 이익 균형 실현, 화폐자본이 실물경제 발전에 봉사하도록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방안을 우리 시대의 시급한 경제 문제 해법으로 논의하고 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 소유권의 사회적 책임과 토지공개념 강화, 생태계 보전과 결합하는 기본소득 도입,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달러 패권체제 해체를 위한 세계중앙은행 설립과 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1981년 기독교장로회 목사 안수를 받고 해군 군목으로도 사역한 강 교수는 기독교경제윤리의 규범으로 ‘참여의 원칙, 생태계 보전의 원칙, 정의의 원칙, 인간 존엄성 보전’ 네 가지를 제시했다.

가장 앞선 참여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는 서양 철학의 전통은 노동과 의사소통이 분리되어 있어요.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노동이 의사소통의 한 형식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는 한 방식이 바로 노동이죠.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뒤 사람들을 불러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일하라고 분부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의 기본취지이죠. 노동은 의사소통을 통해 비로소 형식을 갖춥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일방적인 부림만 있고 소통 없는 노동은 비기독교적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조직하고 운용할 때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독일에서 1950년대 초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법제화한 것도 이 나라 기독교계가 참여의 원칙이라는 신학 이론으로 뒷받침한 영향이 큽니다.”

그는 인간 존엄성 원칙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마주 서서 대화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점(창세기 1장28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칙 역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과정 조직과 노동조건 형성에 주체적으로 관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단다. 그가 “노동권과 소유권의 상호불가침과 상호제한을 토대로 노동사회를 재구성하자”며 근대 이후 사실상 불가침의 영역이 된 소유권의 행사가 노동권을 침해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규율하자고 외치는 것도 이런 인식이 뒷받침한다. “기업의 경제정책 수립이 노동자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경우 노동자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동의를 얻어 시행해야 합니다. 기업의 자산 매각이나 공장 해외 이전이 대표적이죠. 기업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게 되잖아요.”

기독교경제윤리론 체계적으로 다룬
국내 처음이자 세계 세 번째 저술
안병무 교수 제자·2세대 민중신학자

참여·생태계 보전·정의·존엄성 원칙
경제적 선·정의 구현 방안 모색해
노사공동결정제도 등 대안 제시
“논의에 기독교계 뒷받침 없어 외로워
교인들, 개인 구원 아성 속에서 농성 중”

이런 ‘학문적 견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묻자 그는 2000년 무렵 참여연대에서 ‘기업감시 활동’을 할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기업 관계자에게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이야기하자 ‘못들은 걸로 하겠다’고 하더군요. 한국 기업들은 노동과 자본이 함께 노동조건에 대한 합의를 추구하는 걸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 학자들도 마찬가지죠.”

이런 기독교경제윤리 논의가 사회에서 힘을 얻으려면 기독교계의 뒷받침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외롭다”는 말을 먼저 했다. “신학교 학생들은 제 이야기를 공감하지만 목회자들은 싫어합니다. 교회를 책임지는 장로들은 더 그렇죠.”

그는 이어 “한국 기독교계가 경제와 관련해 가지고 있는 고질적 태도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한국 교인들은 자본주의와 개신교 정신의 친화성을 강조하는 막스 베버의 영향으로 개신교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종교로 생각합니다. 이 경향이 갈수록 강화하고 있어요. 다른 하나는 거의 대부분 개신교회를 지배하는 기복신앙입니다. 부와 사회적 지위, 건강을 얻기 위해 하나님에게 떼쓰듯 기도하고 물질적 성공을 얻으면 하나님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이죠.”

그는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물질적 축복이나 사회적 지위 추구 등 개인주의에 골몰해 사회 정의나 민주주의, 인권, 생태계 위기 등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은 현재 개인 구원의 아성 속에서 농성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친미반공과 자본주의 옹호라는 극단적인 보수주의 성향도 심각해요. 기독교인들이 극우 정치를 위해 동원되고 있잖아요.”

“국내에 기독교경제윤리 전공 교수는 서너 명입니다. 독일은 열다섯 명 정도이죠.” 정년퇴임 뒤에도 한신대에서 대학원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강 교수 설명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 뭐가 가장 시급하냐는 물음에는 “소박한 이야기”라면서 예수가 십자가 처형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린 기도의 뜻을 잘 헤아리면 좋겠다고 답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저에게 주는 이 잔을 거두어주세요.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잔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운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욕망을 이뤄달라고 주장하지 않고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이런 태도를 길러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인식하고 그 일에 동참하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이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것처럼 말하지만 저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독서 모임을 조직해 시장경제체제를 규율하는 방안을 함께 만들고 싶다”면서 이런 바람도 나타냈다. “제 학문이 한국 기독교의 딱딱하고 굳어진 관념이나 가치 체계를 해체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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