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악 이어달리기의 종착점 [저널리즘책무실]

한겨레 2024. 7. 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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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언론인들과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활동가들이 28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한국방송(KBS) 등 공영방송 임원 선임 계획안을 2인 체제에서 의결한 방송통신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말,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제가 그만두더라도 제2, 제3의 이동관이 나온다.”

‘자진 사퇴’ 시나리오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 전 위원장 탄핵소추가 추진되던 때였다. 그는 결국 탄핵소추안 본회의 처리 하루 전날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럴(자진 사퇴할) 일은 없다”던 그가 ‘백번 양보’한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탄핵에 따른 방통위 마비 사태를 피함으로써 방송 장악의 고삐를 계속 조여야 한다는 정권의 의중을 충실히 따랐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는 실제로 사퇴 당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사임한 건 오직 국가와 대통령을 위한 충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론 정상화의 기차는 계속 달릴 것”이라고도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제2의 이동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다. 김홍일이 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 선배’로 꼽는다는 인물이다. 지난 대선 때는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더욱이 그는 권익위원장이 된 지 고작 다섯달 만에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방송 장악용 돌려막기 인사라는 말 외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하기야 윤 대통령 처지에선 ‘언론 장악 기술자’ 이동관을 대체할 만한 구원투수로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힘들었을 성싶다.

이 전 위원장이 ‘2인 체제’ 운영으로 탄핵소추됐음에도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74건의 안건을 이상인 부위원장과 단둘이서 의결했다. 그 안건들 중에는 와이티엔(YTN) 최대주주 변경 승인(민영화)도 포함돼 있다.

‘제2의 이동관’으로 방통위에 들어온 김 위원장은 나갈 때도 ‘이동관의 길’을 따라갔다. 야당의 거듭된 경고에도 ‘2인 체제’에서 문화방송(MBC) 등 공영방송 이사 물갈이를 감행하다 결국 탄핵안이 발의됐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처리되기 직전 자진 사퇴한 것도 닮은꼴이다. 윤 대통령은 참 든든할 것 같다. 탄핵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통령의 방송’을 헌정하기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충신을 둘씩이나 곁에 뒀으니 말이다.

이제 ‘제3의 이동관’이 등장할 차례다. 김 전 위원장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진 물갈이 계획’을 의결하고 나왔으니, 후임자는 친정부 인사를 낙점해 이사회에 꽂기만 하면 된다. 너무 익숙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레퍼토리다. 윤석열 정권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찍어낸 뒤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김효재 방통위원도 그랬다. 3개월간 온갖 우격다짐으로 공영방송의 야권 이사들을 솎아내는 임무를 완수하고 후임인 이동관 위원장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언론계에선 김 직무대행이 이동관 위원장에게 방송 장악 꽃길을 깔아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직무대행에서 시작된 ‘방송 장악 이어달리기’의 종착점은 문화방송이다. 현 정권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문화방송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임기는 다음달 12일 끝난다. ‘이동관 2인 체제’의 방통위에서 법원의 제동으로 실패했던 문화방송 장악이 ‘김홍일 2인 체제’를 거쳐 세번째 2인 체제에서 마침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방송 장악에 진심인 정부가 또 있을까 싶다.

‘제3의 이동관’으로는 이진숙 전 대전문화방송 사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전 사장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문화방송이 철저히 짓밟히던 김재철 사장 시절, 홍보국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기획조정본부장 시절에는 문화방송 일부 지분(정수장학회 보유분) 매각 논의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가 방통위원장이 되면 민영화 카드를 빼 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동안 여권이 꾸준히 주장해온 미디어 시장 개편 방향이 ‘1공영 다민영’ 체제 아닌가. 현실적 제약 탓에 민영화를 끝까지 밀어붙이진 않더라도 문화방송 길들이기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땡윤 방송’ 만들기에 순순히 협조할 리가 만무할 텐데, 그럴 경우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데 민영화만큼 효과적인 카드가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뻔히 결말이 예정돼 있는데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야당이 제출한 ‘방송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을 아무리 지적한다 한들 의결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설사 방통위가 5인 체제로 정상화된다 해도 여야 3 대 2 구도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속수무책이다. 방통위를 정점으로 한 낡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좀 더 일찍 손보지 않은 후과다. 애꿎은 시청자와 방송 노동자들이 그 피해를 입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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