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가 만나 … 예술이 된 현판·누비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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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슬기 작가(52)는 어느 날 덕수궁의 대한문을 통과하면서 의문을 가졌다.
곱디고운 누비이불로 작업을 했던 작가가 6년 만에 현판을 들고 돌아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어의 의성어는 매우 그래픽적이다. '쿵쿵' '쾅쾅' '꿍꿍' 등의 단어는 모두 삼삼한(외형이 그럴듯하다는 뜻) 장면을 생성한다. 중요한 이름이 새겨진 현판과 대조적으로 글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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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민속·사물에 영감
현지 장인들과 협업하면서
독특한 미학으로 표현해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슬기 작가(52)는 어느 날 덕수궁의 대한문을 통과하면서 의문을 가졌다. "이 사람만큼 거대한 현판은 뭘까. 왜 동양에선 정치적 의미를 담은 문의 이름을 붙였을까."
그래서 현판을 미술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의 안과 밖을 가르고 내부를 정의하는 현판은 그의 눈에 외부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안테나'처럼 느껴졌다. '쿵쿵' 두 글자를 홍송(紅松)에 돋을새김하고 흰 단청으로 'ㅎ'을 그려넣었다. 다른 현판에는 '스르륵' 위에는 '쉬'라고 적고, '출출' 위에는 '쏴'라고 적었다. 의성어·의태어를 활용한 언어유희다.
"이 큰 갤러리에 구멍을 뚫어서 빛을 가져오자고 생각했다. 뚫으면 쿵 하고 소리가 날 텐데 그걸 표현한 거다. 영화 '라쇼몽'은 보는 이에 따라 서사가 달라진다. 문을 통해 서사가 변하는 셈인데 그런 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곱디고운 누비이불로 작업을 했던 작가가 6년 만에 현판을 들고 돌아왔다. 갤러리현대는 이슬기 작가의 개인전 '삼삼'을 8월 4일까지 연다. 2018년 작가가 만들어낸 주문의 이름을 딴 '다마스스(DAMASESE)' 이후 이 곳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 짧은 머리에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가진 이 작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세계 각국의 민속과 사물, 언어를 미학적으로 구현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을 받고 파리 라트리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던 이 중견 작가는 한국 장인과의 협업에 전보다 더 푹 빠진 모습이었다. 한국에 몇 개월 동안 체류하며 고안해낸 '현판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설치 작업 30여 점을 펼쳐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어의 의성어는 매우 그래픽적이다. '쿵쿵' '쾅쾅' '꿍꿍' 등의 단어는 모두 삼삼한(외형이 그럴듯하다는 뜻) 장면을 생성한다. 중요한 이름이 새겨진 현판과 대조적으로 글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전통예술이 현대미술을 만나면 이렇게 별난 작품들이 된다. 작가는 가상의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노을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다. 첫 번째 구멍은 문살로 스며드는 빛이다. 전시장 각 층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모시 단청 벽화'가 그려졌다. 긋기 단청이라는 전통 기법을 구사하는 단청 장인과 협업해 섬세한 문살 문양을 그려넣었다. 모시천의 씨실, 날실과 닮았다.
1층과 지하 사이 공간에는 '느린 물'이란 격자 무늬 설치작품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전시장 곳곳에는 여성의 신체를 모티프로 한 '쿤다리' 연작도 설치됐다. 작가는 "거미와 개구리를 떠올리며 만든 작업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다섯 개의 원이 서로를 기댄 작품은 '거미'다.
지하 1층에서는 2012년부터 작업해온 대표작 '이불 프로젝트'도 소개된다. 통영의 장인들이 손으로 짠 누빔 이불은 강렬한 원색의 추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칫국부터 마신다' '트집잡다' '부아가 나다' 같은 속담을 숨겨놓은 이불들은 작가의 '주술적인 조각'이다.
그는 "1992년 프랑스에 건너간 뒤 만난 친구들에게 한국 이불의 찬란한 색이 너무 예뻐서 선물로 주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인들에게 직접 의뢰해 만들기로 했다"면서 "이불 안에서는 잠도 자고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아프기까지 한다. 수평적 자세가 우리 삶의 반 이상이더라. 이 개인적 물건에 속담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숨겨놓으면 어떨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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