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0만명 사망해도 무덤덤한 미국에 경종…신간 '사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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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각종 사고 조사의 목적은 누군가의 실수가 사망으로 이어지도록 한 위험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누군가 같은 잘못을 반복했을 때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도록 조건을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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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미국에서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승객을 가득 태운 보잉 747-400 제트기가 매일 한 대 이상 추락해 전원이 사망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미디어가 대서특필하겠지만, 한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는 금세 잊힌다. 마치 누군가가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론을 맞이한 일을 더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취급한다. 결국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내년에도 20만명이 갑자기 목숨을 잃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제시 싱어는 최근 번역·출간된 '사고는 없다'(위즈덤하우스)에서, 사고가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고에 무감각해진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사고 발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인간의 과실, 즉 실수와 위험한 조건(환경)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면 유조선을 운항하다가 암초와 충돌하는 것은 인간의 과실이며, 유조선 승무원에게 하루 12시간을 내리 근무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또 과속 차량이 사람을 치는 것은 인적 과실이지만 자동차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게 설계된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인간의 과실과 환경 중 어느 것이 사고에 유발하는 더 큰 요인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인적 과실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 측은 산업 현장의 사고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노동자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하지만 책은 인간이 실수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실을 예상하고 그것이 생사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조한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각종 사고 조사의 목적은 누군가의 실수가 사망으로 이어지도록 한 위험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누군가 같은 잘못을 반복했을 때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도록 조건을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자들은 이런 방식의 변화를 순순히 수용하지 않기도 했다. 미국에서 안전벨트와 에어백은 수십 년의 정치적 싸움을 거쳐서야 의무화됐다. 초기에는 소비자가 추가 비용을 내서 에어백과 안전벨트를 사야 했는데 이는 항공기의 구명조끼가 퍼스트 클래스에만 있고 이코노미석 탑승자는 추가 비용을 내고 사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책은 꼬집는다.
책은 자동차 사고, 철도 노동자 사망사고, 원전 사고, 타이태닉호 침몰, 기름 유출 등 다양한 사고 사례를 소개하며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나 사고의 책임에 내몰릴 가능성이 불평등하게 배분된다고 지적한다. 사고를 둘러싼 담론은 강자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관련된 대응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 코넬대는 자동차 충돌로 인한 손상 연구의 하나로 충돌 내구성 테스트 방식을 정교화했다. 문제는 거의 모든 충돌 테스트 인형이 남성의 신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신체에 맞는 충돌 테스트용 인형이 없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더 많이 사망한다고 한다.
책은 사고 대응의 핵심은 예방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고 증가 추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개인, 기업, 정부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조치를 제안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환경을 주변 사람들이 실수를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보자. 그러면 아무리 작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권력과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중략) 시스템상의 문제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사고였다고만 말하는 설명을 거부하고 더 길고 자세한 이야기를 요구하자."
김승진 옮김. 456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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