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손’부터 ‘메갈 손’까지…혐오 드러내는 심리는

김지호 2024. 7. 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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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고 과시하려는 소영웅주의 만연하다”
“남혐·여혐 자신의 잘못 인정하지 않으려 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를 상징하는 손모양(왼쪽)과 극단적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 로고. 2016년 5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 일간베스트를 상징하는 손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당시 이 조각 작품을 출품한 홍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는 “해당 작품은 편가르기를 위한 것은 아니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특정 집단을 상징하는 손모양이 상업용 광고와 공영방송 등 여러 매체에 등장해 논란이다. 이러한 논란은 최근까지 계속되며 성별, 외모, 정치 성향 등 특정 집단을 향한 맹목적인 비난과 혐오,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인정받거나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로 인해 집단을 상징하는 표현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고업계 뒤흔든 남성혐오 손모양 논란

지난달 27일 르노코리아의 신차 발표 리뷰 영상에서 남성혐오를 상징한다고 지적된 손동작이 여러 차례 눈에 띈다는 글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했다. 영상 제작 당사자는 사과 글을 르노코리아 유튜브 게시판에 올렸다.

당사자는 “영상 제작에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행동하지 못해 죄송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정 손 모양이 문제가 되는 혐오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신차 리뷰 영상에 표현한 손 모양이 그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건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비판은 계속됐고 르노코리아 측은 지난 1일 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직원의 직무를 금지시키겠다고 밝혔다. 르노코리아는 “최근 발생한 당사의 사내 홍보용 콘텐츠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셨을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관련 논란에 깊은 우려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집게손가락 모양은 극단적 페미니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의 로고다. 메갈리아 로고는 엄지와 검지를 펼쳐 마치 길이를 재는 듯한 손 모양으로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고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5년 1월 청와대 폭파 협박 용의자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를 나서던 중 ‘일간베스트’를 뜻하는 손동작과 유사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폭파 협박범의 ‘일베’ 손모양 의혹

10년 여년 전에는 청와대 폭파 협박범 20대 강모씨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나서면서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를 뜻하는 손동작과 비슷한 제스처를 취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강씨는 수원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법원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일베를 뜻하는 손모양과 유사한 손동작을 했다.

강씨가 촬영된 사진을 보면 그는 왼손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든 상태에서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고 있다. 이 손모양이 일베를 뜻하는 손모양과 비슷했다. ‘일베 인증’ 손 모양은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든 뒤 나머지 세 손가락은 편 상태에서 약지만 접어 일베의 자음인 ‘ㅇ’과 ‘ㅂ’을 만드는 손동작이다.

강씨는 2015년 1월 프랑스에서 일주일간 6차례에 걸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폭파하겠다는 등의 협박 글을 올렸다. 이후에도 청와대로 5차례 폭파 협박 전화를 건 혐의(협박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강씨는 프랑스에서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가 연결이 되지 않자 SNS 검색창에 ‘일간베스트’, ‘북한’, ‘빨갱이’ 등 키워드를 검색했고 이와 관련된 글을 올린 적 있는 네티즌에게 ‘멘션’하는 방식으로 청와대 폭파 협박 글을 온라인에 게시했다. 그가 사용한 SNS에서 특정 아이디로 멘션한 뒤 글을 올리면 불특정 다수도 글을 볼 수 있지만, 해당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들에게는 메시지처럼 글이 전달된다.
전문가들은 특정 집단에 속한 이들이 혐오 표현을 드러내는 이유로 ‘인정’과 ‘과시’ 욕구를 꼽았다. 게티이미지뱅크
◆혐오 드러내는 이유…인정·과시 심리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이 혐오 표현을 드러내는 이유로 ‘인정’과 ‘과시’ 욕구를 꼽았다. 임 교수는 “본인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을 관심과 인정으로 생각하는 심리가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혐오 등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을 드러내는 것이 과거에는 부끄러운 행동으로 여겨졌지만 (해당 집단에서) 인정받고 과시하려는 소영웅주의가 만연해진 탓”이라며 “SNS 등이 발달하면서 서로 소통이 편해지고 과시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곽 교수는 “본인의 의견과 사상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이런 행동이 (집단에서) 인정받게 됨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우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백파이어 효과’(Backfire effect)라고 부연했다. 백파이어 효과는 자신의 주장이 모순되거나 틀렸다는 증거가 나타나도 인정하지 않고 더 세게 우기는 행태다.

곽 교수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받았을 때 ‘고쳐야겠다’가 아닌 상대방의 말에서 오류를 찾아내려 하고 그 과정에서 만족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면 인간은 그때 고통을 받기 때문에 상대의 오류를 찾아서 기쁨이나 만족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논쟁이 이어지고 혐오 표현일지라도 계속 대중에게 드러내는 행위가 지속된다”며 “혐오의 감정은 상대방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는 감정이므로 앞으로도 이런 논란이 또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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