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의 역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7. 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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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는 총알을 막는다'는 뜻의 방탄(防彈)이 정치 용어로 쓰인 것은 제법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3공화국 시절인 1964년 3월14일 발행된 어느 일간지를 보면 전날 국회에서 벌어진 상황이 기술돼 있다.

이후 현재까지도 정치 뉴스를 전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 '○○당이 방탄 국회를 열어 ○○○ 의원의 구속을 막았다'와 같은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제아무리 튼튼한 방탄조끼를 입어도 훌륭한 무기, 막강한 화력 앞에선 맥을 못 췄다는 것이 전쟁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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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는 총알을 막는다’는 뜻의 방탄(防彈)이 정치 용어로 쓰인 것은 제법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3공화국 시절인 1964년 3월14일 발행된 어느 일간지를 보면 전날 국회에서 벌어진 상황이 기술돼 있다. 국회 내무위원회(현 행정안전위원회) 회의가 열렸는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장관 대신 차관이 참석했다. 의원들은 일본 어선의 우리 영해 침범을 막을 대책이 부족하다며 질타를 쏟아냈다. 차관은 별다른 묘안을 내놓지 못한 채 혼쭐만 나고 회의가 끝났다. 신문은 이를 가리켜 ‘차관이 장관의 방탄조끼가 되었다’는 표현을 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정희정부 시절 최두선 국무총리는 짧은 임기(1963년 12월∼1964년 5월) 내내 ‘방탄 총리’로 불렸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공격을 묵묵히 방어하는 역할에만 급급했다는 뜻이다. 의원들의 매서운 질의에 최 총리는 “제가 (총리를) 맡아보기 전의 일이어서 모릅니다” “적절히 조처하겠습니다” 등 원론적 답변만 내놓으며 예봉을 피했다. 자연히 그 밑의 장관들도 ‘방탄 내각’이란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최 총리를 취임 5개월 만에 경질하고 후임에 정일권 전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4성장군 출신답게 ‘돌격 총리’란 별명을 얻은 그는 박 대통령의 신임 아래 1970년까지 6년 동안이나 행정부 ‘2인자’ 자리를 지켰다.

‘방탄 국회’라는 말은 199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면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제44조 때문이다. 동료 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별다른 현안이 없는데도 국회 회기를 무한정 늘리는 편법을 일컫는다. 이후 현재까지도 정치 뉴스를 전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 ‘○○당이 방탄 국회를 열어 ○○○ 의원의 구속을 막았다’와 같은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돼 법원 재판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유죄 선고로부터 보호하고자 민주당 의원들이 벌이는 여러 활동에도 어김없이 ‘방탄’이란 딱지가 붙는다. 급기야 이 대표 수사에 참여한 검사 탄핵 카드까지 나왔으니 방탄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일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4명 탄핵소추안 발의를 규탄하고 있다. 왼쪽은 신자용 대검찰청 차장검사. 연합뉴스
민주당이 2일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 수사 과정에서 비위를 저지른 의혹이 있다는 등 이유에서다. 민주당이 원내 과반 다수당인 만큼 탄핵안의 국회 통과는 확실시된다. 단,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선 기각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공직자를 파면하려면 헌법이나 법률 위반 사실이 명확해야 하는데 제1야당 대표의 수사가 곧 위헌 또는 위법의 자동 성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격분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 대표와 민주당을 겨냥해 “검사를 탄핵한다고 해서 있는 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제아무리 튼튼한 방탄조끼를 입어도 훌륭한 무기, 막강한 화력 앞에선 맥을 못 췄다는 것이 전쟁사의 교훈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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