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이후가 더 걱정되는 여당[이현종의 시론]

2024. 7. 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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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비대위가 마치 정상처럼 인식
3연속 총선 패배에 조직 붕괴
영남지역은 수도권과 딴 세상
대통령 영향력 줄어든 全大
배신의 정치 다시 등장해 혼탁
비전·정책 놓고 경쟁 펼쳐야

국민의힘은 그동안 비상대책위원회가 ‘정상’이고 당 대표 체제는 마치 ‘비정상’처럼 인식돼왔다. 2016년 이후 김희옥·인명진·김병준·김종인·주호영·정진석·한동훈·황우여 등 8명의 비대위원장이 당을 이끌어 왔다. 반면, 국민의힘 당명 아래 정상적인 당 대표는 이준석·김기현 두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두 명 모두 제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치열한 선거전을 거쳐서 당 대표를 뽑아 놔도 선거 한 번 패배하거나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면 너무 쉽게 교체되다 보니 지도체제가 있을 리가 없다. 이러니 집권 여당이 동네 친목회 조직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3번 연속 총선에서 패배하고 당 지도부가 임시직 ‘알바’ 신세여서 당은 엉망이 돼 갔다. 이번 총선에 뛴 수도권 지역의 한 후보는 “공천을 받아 지역에 가서 당원 명부를 받아 보니 기가 막혔다”면서 “당원 전화 번호가 한참 전에 없어진 019, 018 등이 태반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3회 연속 선거에 패배하다 보니 전통적으로 보수·여당 조직인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 구성원들도 더불어민주당 쪽이 장악하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뿌리가 다 썩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조직적·효율적 선거 운동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영남 지역에서 당선한 한 의원은 치열했던 수도권 선거 상황에 대해 얘기 듣고서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선거가 그렇게 어려웠냐”며 마치 사돈 남 말 하듯 했다. 일부 영남 지역 출마자들은 하루 한 번 선거 운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쟁자가 약해 형식적으로 대충 선거 운동을 하다 당선돼 올라오니 치열함이 없다. 영남과 수도권은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수도권 낙선자들이 지구당 부활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도 기득권인 영남권 의원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당의 정책을 제언하는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이 2명밖에 되지 않고, 노조 입김이 강하다 보니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반면,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박사급이 15명에 달한다. 여당의 싱크탱크가 이 모양이니 정책을 주도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예전에 ‘보수는 부패해도 유능하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젠 되레 ‘부패하지는 않지만 유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속설이 돼 버렸다.

이번 전당대회는 예전과 다른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대통령의 영향력이 겉으로 보기엔 없는 유일한 경선이다. 지난해 김기현 대표 선출 때만 해도 나경원 의원을 주저앉히고, 안철수 의원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고를 공공연히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엔 표면상으론 엄정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 참모들이 한동훈 후보를 겨냥해 언론에 “절윤(絶尹)” 운운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둘째, 나경원 후보는 대선 불출마를 얘기했지만 어쨌든 대선 후보급 대표 후보들이 나서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하고 흥행도 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불과 얼마 전까지 ‘브로맨스’를 자랑하던 이들이 갑자기 철천지원수가 된 듯이 서로의 과거와 정체성까지 문제 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악몽 같았던 ‘배신의 정치’가 다시 등장했다. 셋째, 누가 당선돼도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가 재정립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금은 한 후보가 가장 멀리 있지만, 다른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지금처럼 수직적 당정 관계로는 ‘20%대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역으로 이번 전대만큼 각 후보의 소신과 비전이 중요한 때도 없다. 이번에 당선되는 대표는 다음 대선으로 가는 1등석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상 대선 후보 경선 성격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이를 당원과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점점 위축되던 보수 정치는 지난 대선 승리로 잠시 활력을 찾았지만, 다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보수 정치인은 품격과 비전이 야당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가면 친박-친이 갈등을 뛰어넘는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과거의 행태를 들춰내 공격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국민은 지켜보고 싶다.

이현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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