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상속세의 민낯[뉴스와 시각]

이용권 기자 2024. 7. 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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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설립된 유니더스는 콘돔시장 세계 1위를 차지했던 국내 중견업체였지만, 2015년 창업주가 별세한 뒤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창업주 유족이 약 50억 원의 상속세 부담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종자 기업이었던 농우바이오 또한, 2013년 창업주 사망 후 1200여 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으로 유족이 회사를 포기했다.

쓰리세븐, 락앤락 등 세계적 국내 기업도 상속세 부담으로 사모펀드에 넘어간 뒤 적자를 보거나 해외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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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산업부 차장

1973년 설립된 유니더스는 콘돔시장 세계 1위를 차지했던 국내 중견업체였지만, 2015년 창업주가 별세한 뒤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창업주 유족이 약 50억 원의 상속세 부담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에 넘어간 뒤 사명 변경과 함께 사업 다각화가 진행됐지만, 영업 손실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1위 종자 기업이었던 농우바이오 또한, 2013년 창업주 사망 후 1200여 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으로 유족이 회사를 포기했다. 쓰리세븐, 락앤락 등 세계적 국내 기업도 상속세 부담으로 사모펀드에 넘어간 뒤 적자를 보거나 해외에 팔렸다.

대한민국 고용률은 지난 5월 기준 63.5%다. 취업자가 직장인만이 아닌 것을 감안해도 대략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반수 이상은 월급 받는 봉급쟁이인 셈이다. 직장인 입장에선 회사가 잘돼야 월급도 오르고 고용도 안정되지만, 모든 회사는 매년 위기라고 한다.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기업 활동하기 어려운 나라다.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한국엔 17개에 불과하다. 3만 곳이 넘는 일본, 2만 곳 이상인 미국과 격차가 크다. 독일도 5000곳이 넘는다. 일본은 200년이 넘은 기업도 1300곳이나 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영향이 크지만, 혹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 법제도는 장수기업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3대를 거쳐 상속되면 장수기업도 정부 소유가 된다’는 말도 돈다. 상속세가 현금으로 내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 주식으로 내 정부 비중이 커진다는 뜻이다. 넥슨 그룹 창업주가 사망한 이후 유족이 상속세로 지분을 물납하면서 기획재정부가 넥슨의 2대 주주가 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재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총수가 상속세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코미디 같은 현상도 나온다.

상속세는 기업인들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12억 원 수준까지 오르면서, 자녀가 있는 서울시민은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 부과 대상이다. 현행 기준대로 12억 원의 아파트를 상속받을 경우 배우자가 없으면 1억5000만 원의 세금을 토해야 한다.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듯 유튜브 등엔 상속세 절감 내용이 유행처럼 떠다닐 정도다.

선진국은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인다. 상속세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5개국은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과세하는 23개국 중 15개국은 직계비속에 대해선 면세하거나 경감한다.

다행히도 정부가 세법개정안 중 ‘상속세 개편’을 시급 사안으로 꼽았고,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상속세율 인하, 유산취득세·자본이득세 등 구체적 대안도 거론된다. ‘부자감세’라며 반대하는 거대 야당이 상속세는 부자들을 위한 징벌적 과세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 기업가들은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고민하고 경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많은 창업인이 자녀에게 경영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매각하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과연 누가 기업을 창업하고, 또 성장시키고 싶겠나.

이용권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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