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세상 마지막 날, 반드시 피자집에 가야했던 이유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신정선 기자 2024. 7. 3. 09: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75번째 레터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입니다. 이 영화를 레터로 고를 줄 몰랐습니다. 보기 전까지는요. 개봉 하루 전날 시사가 잡혀서 굳이 시사회를 가보지 않은데다(개봉날 조조로 봤습니다), 홍보 내용만 봐서는 ‘많고 많은 프리퀄 중 하나인가’ 싶었거든요. 게다가 공포영화로 알려진지라 (안 그래도 세상에 무서운 거 많은데) 딱 의무 감상 영화겠거니 했는데, 오호라. 주인공이 문자 그대로 ‘죽도록’ 집착하는 피자, 그 피자가 제 마음을 흔들었네요. 피자를 너무 싫어하는 제 마음을요.

소리 내면 잡아먹는 외계인을 피해 주인공 샘(루피타 뇽)과 에릭(조셉 퀸)은 도망칩니다. 그런데 살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피자집을 찾아가네요. 도대체 왜? 그 답은 영화에 있습니다. 가운데 고양이는 프로도. 아주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답니다.

우선 아셔야 할 거. 이 영화, 공포 영화 아닙니다. 먼저 나온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공포 스릴러라 공포영화 팬들이 많이 보셨고, 이 영화가 프리퀄이니 공포의 기원을 보여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실텐데, 아닙니다. 저도 약간 의외였어요. 안 무섭습니다. 긴장되는 부분이 있긴 한데 약하고요. 그래서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가 2위까지 올라가더니 쭉 떨어진 게 그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 기대와 내용이 다른 탓인거죠. 공포영화인줄 알고 갔는데 그게 아니면 관객은 실제 작품성보다 훨씬 낮은 평점을 주게 마련입니다. 마케팅의 기본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의 배신감을 방어할 마케팅적 예방 조치가 전혀 없습니다. 순위가 빠질 수밖에요.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오히려 전작을 모르거나 공포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관객(그렇습니다, 바로 저 같은)에게는 오히려 나은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전작을 안 보셔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 동태눈이고, 소리를 듣고 쫓아와서 잡아먹는다, 이거 딱 하나만 아시면 되는데, 이건 이 영화에서도 바로 보여주기 때문에 모르고 극장 오셔도 되고요. 드라마가 강한 작품입니다. 특히 엔딩. 어설프게 열린 결말 같은 거 시도하지 않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꽂아놓은 결말도 좋았습니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냐. 감독 마이클 사노스키가 ‘반지의 제왕’ 팬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주인공 이름이 샘(사미라, 루피타 뇽)이고, 반려 고양이는 프로도입니다. 말기암 환자 샘은 프로도와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어느 날 다른 환자들과 함께 뉴욕 시내로 단체 나들이를 가게 됩니다. 이때 샘이 간호사에게 조건을 겁니다. “할렘 피자집 펫시스에 가서 피자를 먹겠다”고요. 그리고 짐작하시듯 하필 샘이 시내에 간 날 외계인이 침공하고 소리 내는 인간들은 죄다 먹잇감이 됩니다. 이 외계인들은 수영을 못하거든요. 즉, 바다로 가면 공격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필사의 탈출을 위해 배를 타러 가는데, 샘은 혼자 반대 방향인 할렘으로 갑니다. 그 피자 먹겠다고요. 아니, 그 피자가 뭐기에, 죽을 지도 모르는 길로 가는가. 샘을 따라오는 한 남성(에릭, 조셉 퀸)이 있는데, 둘이 외계인을 피해 도망쳐 다니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말에 이릅니다.

아니, 그게 뭐야 싶으신가요. 스토리는 단순해요. 공포도 없고 별로 긴장되지도 않고요. 가끔 소리를 안 내야하는데 실수로 소리가 나서 긴장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무섭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의 핵심은 피자라고 생각해요. 샘은 왜 그렇게, 꼭, 할렘에 있는 펫시스에 가서 피자를 먹고 싶었을까요. 다른 곳도 아닌 펫시스, 다른 음식도 아닌 피자. 더 구체적인 답은 영화관에서 아시고 싶으실 수 있으니 일단 넘어갈게요.

동태눈 외계인을 피해 샘이 고양이 프로도를 꼭 안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프로도는 그다지 동요를 보여주지 않고 늠름한데요, 샘이 입은 저 겨자색 가디건에 주목해주세요. 나중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답니다.

샘과 에릭은 결국 펫시스에 도착해요. 하지만 이미 불탄 후죠. 샘이 희망을 잃으려 할 때마다 에릭이 말합니다. “피자 먹기 전까진 안 돼”라고요. 샘과 에릭의 교감이 이야기가 굴러가는 중요한 기제인데, 과장하지 않으면서 젖어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야기 구조상 신파의 위험도 있었을텐데 확실하게 거리를 둔 점도 현명했던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으면 이런 대사 꼭 들어갔을걸요? “너가 내 딸이라서 좋았어~~ 흙흙” “아빠가 제 아빠라서 좋았어요~~ 흙흙”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딸로 태어날래요~~ 흙흙”. 귀에 쟁쟁하네요. 의젓하고 똘망똘망한 고양이 프로도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닐까 궁금하실텐데, 아니라고 합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연기했다고 외신에 나오네요.

엔딩에서 샘은 선택합니다. 이제 펫시스를 가봤으니 그 선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엔딩에 흐르는 곡이 니나 시몬의 ‘필링 굿’인데 정말 탁월한 선곡이었습니다. 박수 짝짝. (동일한 노래가 3일 개봉하는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엔딩에도 나옵니다. 묘한 일치인데, 둘 다 너무 잘 어울려요.) 이렇게 은유와 함께 꽉 닫힌 결말이 상업 영화가 취할 수 있는 당당한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북미에선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더 내려갈 것도 같은데, 공포영화 아니고 SF도 아니고요(외계인은 그저 비유로 등장), 재미있는 단편소설을 다 읽고 막 내려놨을 때처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무엇이었던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풀어볼 열쇠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할렘이 아니고 피자가 아니어도 됩니다. 마지막 순간에 내 마음이 붙들어맬 곳, 그 상징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피자 안 좋아하고 안 먹는 저도 샘이 꼭 피자집에 도착하기를 응원하면서 봤답니다.

여러분은 외계인이 침공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날,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곳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 곳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있어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레터도 보내고요. 그럼, 니나 시몬의 ‘필링 굿’ 들어보시라고 아래 링크 붙일게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