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지치면 '아아' 대신 이것을 마신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7. 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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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만리,성시인문(縱橫萬里-城市人文) ⑪] 고온다습의 남쪽 지역, 링난(嶺南)의 도시 : 우저우(梧州), 광저우(廣州) (글 : 한재혁 전 주광저우 총영사)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리(萬里)'였다. 만리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하지(夏至)가 지나면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무더위에 지칠 때 우리는 얼음을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팥빙수, 수박화채 등을 떠올리지만 중국에서는 다른 것을 떠올린다. 대표적인 피서 음료로 '량차(凉茶)'를 들 수 있다.

더운 지역이라고 하면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3대 화로(火爐) 도시인 충칭(重慶), 난징(南京), 우한(武漢)을 떠올린다. 최근에는 4대 화로 도시, 7대 화로 도시라며 항저우(杭州), 난창(南昌), 창샤(長沙), 푸저우(福州)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운 여름의 길이가 가장 길고 높은 습도까지 고려한다면 광둥(廣東)을 중심으로 한 링난(嶺南) 지역이 가장 더운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링난 지역에서는 고온다습한 기후가 4월부터 시작하여 끝날 듯 끝날 듯 11월까지 이어진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옷이 다 젖어있기 일쑤이고, 밤이 되어도 90%대의 습도와 26도가 넘는 온도의 후덥지근한 열대야가 몇 달이고 계속된다.

에어컨 없이는 지내기 어렵고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현지인도 여름 끝 무렵이 되면 모두 지친다고 한다. 냉수 샤워나 시원한 옷차림 등 더위에 대비한 피서법이 있지만 먹는 것으로 몸의 열감과 습한 느낌을 내리기도 한다.

몸을 시원하게 하는 대표적인 식품으로는 먼저 녹두(綠豆, 뤼떠우)를 들 수 있다. 겨울에는 중국어로 홍떠우(紅豆)로 불리는 팥을 넣은 죽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녹두를 묽게 죽처럼 끓인 후 차갑게 식힌 녹두탕(綠豆湯)을 음료처럼 시원하게 마신다. 오리고기(鴨肉)나 박류인 쿠과(苦瓜), 둥과(冬瓜) 등을 넣은 요리나 탕국도 '청열해서(淸熱解暑)'의 대표 음식이다. 수박, 황도, 포도 등 제철 과일도 더위 해소에 효과가 있다.

왕라오지 량차. 출처 : 바이두

손쉽게 마시는 음료로는 량차(凉茶)를 든다. 량차는 금은화(金銀花), 하고초(夏枯草), 계골초(鷄骨草), 나한과(羅漢果) 등 한약재를 넣고 끓여 차 형태로 만든 것으로, 한량(寒涼)한 성분으로 체내의 화기(火氣)를 낮춘다고 알려져 있다. 열을 내리고 해독 작용을 하며(淸熱解毒), 진액을 만들고 갈증을 없애며(生津止渴), 화기와 습기를 제거한다(祛火除濕)는 것이다. 4세기 초 동진(東晉)의 도학자 갈홍(葛洪)이 중국 남부에 왔다가 더위와 습기로 인한 역병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비방(祕方)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어 청나라 때 왕저방(王澤邦)이 광저우(廣州)의 시장(十三行)에 첫 번째 량차 점포를 내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828년 일이다. 왕저방은 왕아지(王阿吉)로도 불리우는데 량차의 대표 브랜드 '왕라오지(王老吉)'의 창시자이다. 중국인들이 아편전쟁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임칙서(林則徐, 린저쉬)가 광둥에 부임한 후 피로와 더위로 인후통과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부하가 구해온 왕라오지 량차를 마셨고 곧 회복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왕라오지 음료를 생산하는 광약그룹(廣藥集團)은 중국에서 제약회사 중 유일하게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굴지의 첨단 바이오 약품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2022년 중국의 량차 음료 시장규모는 무려 551억 위안(한화 약 10조 원)이나 되며, 전년 대비 12% 이상 성장하였다. 량차는 더위뿐 아니라 매운 음식으로 생기는 몸의 열기를 내려준다고 하여 훠궈(火鍋) 등 매운맛의 마라(麻辣) 음식을 먹을 때는 꼭 같이 먹는 음료가 되었다.

다양한 량차 브랜드 제품

량차의 대중화 추세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량차들이 등장했고, 왕라오지 외에 자둬바오(加多保), 덩라오(鄧老), 후이얼캉(惠爾康), 난통쓰하이(南同四海), 허치정(和其正), 타무진(塔木金) 등이 인기 량차 브랜드로 꼽힌다. 대부분 캔음료 형태로 생산 판매하는데, 량차 브랜드 중 하나인 황전롱(黃振龍) 같은 경우에는 체인점 형태의 점포를 위주로 운영하며 한약처럼 달인 탕약차를 곳곳의 점포에서 개별 판매한다.

광둥 토박이들은 캔음료 형태의 량차보다 약처럼 진하게 마실 필요가 있을 때는 꼭 이것을 점포에 가서 사 마신다. 일부 마니아 수준의 사람들은 아예 원재료를 약재시장에서 사다가 자기 레시피에 따라 집에서 직접 달여 마시기도 한다.

우저우 구이링가오. 출처 : 바이두

중국 사람들이 여름에 열 내리기 위해 먹는 또 하나를 꼽으면 '구이링가오(龜苓膏)'를 들 수 있다. 전통 방식의 제조 비방에 의하면 거북이(龜)가 아닌 자라(烏龜)의 등껍질(龜甲)과 한약 토복령(土茯苓)이 주재료로 들어간다. 젤리 형태의 모양에 반투명의 짙은 검은색을 띠는데, 토복령 등 한약의 씁쓸한 맛 때문에 대개 꿀과 함께 먹는다. 흔히 홍콩 여행을 가서 시내 유명 디저트 가게에서 달달한 시럽이나 차가운 연유와 함께 먹는 거북 젤리 디저트에는 자라 성분이 거의 들어가지 않거나 전분으로 대체하기도 한다고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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