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잊힐까… 엄마의 손수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봅니다[그립습니다]

2024. 7.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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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조영자·1937~ 2023)
지난 2016년 7월 엄마랑 단둘이 제주도 여행을 가서 카멜리아힐에서 찍은 사진.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가늘고 거친 숨결로 엄마가 말씀하셨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엄마 손을 꼭 잡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짧은 순간에 엄마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잘한 건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잘못하고 미안한 것만 생각이 난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저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나도 엄마 딸이라 행복했어.”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해 가을, 그렇게 엄마를 저세상으로 보내드렸다.

어릴 적 엄마는 한시도 몸을 쉬지 않고 늘 무언가를 하셨다. 평생 가정주부로 사신 엄마는 부엌이며 장롱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살림살이에 정성을 다하셨다. 집은 늘 정돈되어 있었고, 먼지 한 톨 없을 만큼 정갈했다. 엄마가 아끼던 자개 화장대 서랍에는 하얀 손수건들이 줄지어 있었다.

특히 뜨개질과 수를 놓는 솜씨가 빼어나셨다. 베갯잇이나 이불보, 여러 가전제품의 덮개를 손수 만드셨다. 심지어 내가 입고 다닌 옷도 거의 어머니가 뜬 것이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새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무척 부러워했다. 내가 학급 반장이 되었을 때, 엄마는 선생님 책상보에 밤새도록 십자수를 놓아 주신 적도 있었다.

설날 아침이면 꽃수가 놓인 앙증맞은 버선이 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밤새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드는 엄마의 방에 퍼진 냉기가 팽팽하게 배어 바짝 코가 높아진 꽃버선을 보면 나도 모르게 뺨에 비벼댔다. 그러면 달아오른 기분이 천장에 닿을 것만 같았다. 회목이 좁은 버선을 신으려 버선목을 잡고 버둥거릴 때마다 외씨버선이 태어났다. 그래도 엄마는 혼을 내지 않았다. 바지랑대로 한껏 치켜올린 빨랫줄에는 해져서 기운 엄마의 버선들이 발목을 잡힌 채 매달려 있었다. 엄마의 버선에는 삶의 때가 묻어 있었다.

검소한 엄마는 한복을 즐겨 입으셨다. ‘자태’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한복을 입은 엄마는 무척 고우셨다. 내 결혼식 때, 한 하객은 신부보다 신부 엄마가 더 예쁘다고 했다.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봐도 엄마가 정말 예뻐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엄마는 음식 솜씨도 남달랐다. 끼니때마다 제철 나물 반찬과 국이 밥상에 올라왔다. 나는 고기보다는 고소한 들기름 내음이 스민 나물 반찬을 더 좋아했다. 엄마는 맛나게 먹는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보시다가는 고기도 먹으라면서 생선구이나 제육을 숟가락에 올려주셨다. 엄마는 가자미식해, 늙은 호박을 넣고 김장김치를 담갔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아버지는 정계 진출이 꿈이었다. 그래서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늘 집 안이 북적였다. 그 많은 사람의 뒤치다꺼리는 결국 엄마 몫이었다. 매일 밥상과 술상을 차려내야 했지만, 엄마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내비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 많던 발길도 뚝 끊겼다. 어린 마음에도, 세상인심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그 딸이 분가했는데도 엄마는 늘 나를 챙기셨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햇마늘 찧어 얼려놓았다’ ‘밑반찬 몇 가지 해놓았다’ ‘김치 담갔으니 맛있을 때 가져가라’ 늘 성화셨다. 이맘때면 만들어 주시던 오이지, 매실청…. 엄마 덕분에 난 한 번도 김치를 담그지 않았다. 품에 끼고 있어도, 그 품을 떠나도 자식은 그저 자식이다.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 없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서 사신 엄마를 내 딸은 “조 여사” 하고 불렀다. 그러면 엄마는 돌아서서 조용히 웃고 계셨다. 버릇없어 보일 수도 있었는데, 은근히 좋아하신 듯하다. 장롱 서랍을 열고 엄마의 마지막 온기가 스민 꽃무늬 손수건을 꺼낸다. 행여 잊힐까 챙겨온 엄마의 유품이다. 하얀 손수건에 코를 대고 엄마의 냄새를 맡아본다. 코끝이 찡하다.

딸 문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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