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귤수저에서 전국구 뷔페의 신으로 불리는 男의 정체 [호텔 체크人]

권효정 여행플러스 기자(kwon.hyojeong@mktour.kr) 2024. 7. 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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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철 앰배서더 서울 풀만 총괄 셰프 인터뷰
특급호텔 최초 뷔페 ‘더 킹스’·1천개 넘는 메뉴 개발
한라봉 효소 넣은 시그니처 피자 등 인기

‘뷔페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의 신종철(54) 총괄 셰프다. 후배들에겐 ‘Mr. 다시 해’란 별명으로 통한다. 그는 깐깐하고 재료와 음식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신종철 셰프는 1992년 제주 신라호텔에서 시작해 2009년 5월 서울 신라호텔로 옮겼다. 이후 JW 메리어트 서울 총주방장으로 6년간 근무했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은 2000년 개관 이래 첫 한국인 총주방장으로 신 셰프를 임명해 화제를 모았다. 2020년, 그는 호반호텔앤리조트로 자리를 옮겨 레저 사업부 식음 총괄 상무 겸 그룹 총괄 셰프로 2년 넘게 일했다. 현재는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의 식음 총괄 겸 총괄 셰프를 맡고 있다.

신종철 앰배서더 서울 풀만 총괄 셰프 / 사진=앰배서더 서울 풀만
신종철 셰프를 만났다. 김한송 셰프의 신간 ‘위대한 셰프의 생각법’은 신 셰프를 포함해 대가6인의 성공 스토리를 담았다. 책에서 ‘일하는 태도’를 성공 요인으로 꼽은 그에게 깊은 얘기를 들어봤다.
이력이 화려하다.
호텔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부족함 없이 살았다. 중학생 때 가세가 기울었다. 수업료를 안 내고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려고 운동을 시작했다. 3년 내내 육상, 마라톤, 테니스를 병행해 운동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선배 권유로 부산 해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졸업 후 외항선을 타고 약 15개국을 3년간 다녔다.

이후 제주에 돌아와 부친과 6개월간 밀감 농사를 지었다. 누나가 서귀포 파라다이스 호텔에 근무하고 있었다. 누나를 따라갔다가 우연히 셰프가 라이브 스테이션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봤다. 인상적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경주 호텔 학교에서 요리를 배우고 조리사로서 길을 걷게 됐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기를 꼽자면.
조리사로서는 드물게 식스 시그마 혁신 활동을 배워 현업에 펼쳤다. 식스 시그마는 100만 개 제품 중 3~4개 불량만을 허용하는 품질 혁신 운동이다. 당시 삼성그룹 전사적인 활동이었다. 신라호텔에서 식스 시그마를 적용한 품질 관리 업무와 요리를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식스 시그마 전문가인 MBB(마스터블랙벨트)를 취득해 현장 문제점과 개선하는 법을 배웠다. 서울 신라에서 근무하다가 JW 메리어트 서울로 가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로컬 브랜드에서만 근무하다가 해외 체인 호텔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서울 풀만 총괄 셰프로 부임하자 1000개 넘는 신메뉴를 개발했다.
어디서 영감을 얻나.
영감이라기보단 고민을 많이 한다. ‘뷔페의 신’이라는 별명은 한 기자가 지어줬다. 성이 신씨라서 그렇게 불렸다. JW 메리어트 서울 리뉴얼 과정에서 뷔페 ‘플레이버즈’를 세팅했다. 처음 800가지 메뉴를 개발해 그중 200가지 정도를 선정했다. 풀만에도 직접 개발한 소스나 요리법을 적용했다. SNS로 유명 맛집을 알아보거나 소통한다.
‘더 킹스’ 대표 메뉴를 꼽자면.
시그니처 피자 / 사진=앰배서더 서울 풀만
‘더 킹스’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객이 좋아할 만한 것들만 선별한 뷔페다. 요즘 가격이 비싼 뷔페가 많은데, 내가 바라는 뷔페상은 아니다. 제대로 먹을 것만 갖춘 뷔페를 만들려고 한다.

첫째로 피자다. 피자 반죽을 만들 때 밀가루에 1㎏당 수분이 약 728g 정도 들어가 ‘72.8g 피자’로 불린다. 반죽에는 제주 서귀포에서 공수한 3년 이상된 한라봉 효소를 넣는다. 시간이 지나도 처음처럼 맛있다.

두 번째는 LA 갈비다. 양념육은 핏물을 깔끔하게 제거해야 한다. LA갈비 두께가 1cm로 잘라져 나온다. 다른 호텔에서는 만나기 힘든 두께다. LA갈비는 3시간 이상 유수해동으로 핏물을 빼지 않으면 나중에 약간 역한 맛과 냄새가 올라온다. 이후 특제 소스에 6~8시간 동안 숙성한다. 숙성 시간은 고기 마블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마리네이드(양념장)를 거치고 고기는 건져내 냉장에서 1시간 숙성을 더한다. 숙성된 고기는 새로운 육수에 담고 숯불에 구워 제공한다.

세 번째는 북경오리다. 광동에 있던 오리 전문 셰프가 만들었다. 최근 중국 대사관에서 호평을 들었다. 올해 미슐랭에 등재된 중식 레스토랑 ‘호빈’과 함께 메뉴 개발을 한다.

뷔페에 대해 본인만의 철학이 있나.
더 킹스 내부 / 사진= 앰배서더 서울 풀만
뷔페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처음 음식을 준비했을 때와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맛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게 라이브 스테이션에서 바로 요리해주는 뷔페다. 그리고 많이 안 버려지게 요리해야 한다.

요리 철학에 대해 말하자면, 첫째는 정성이다.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유능한 셰프나 레시피가 있어도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엉뚱한 요리가 나오는 걸 많이 본다. 두 번째는 요리를 대하는 마인드다. 기분 나쁘게 요리하면 정말 기분 나쁜 요리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조리 단계(프로세스)를 지켜야 한다.

신 셰프는 호반호텔앤리조트에 있을 당시 재료를 찾기 위해 출고된 지 2년도 안된 차량의 운행거리가 거의 10만㎞였다는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재료에 목숨거는 이유가 있나.
한 번은 북쪽 비무장지대(DMZ)까지 가서 고추냉이 잎을 따와 장아찌를 만들어 삼겹살 구이에 사용했다. 이달 문을 연 풀만 한우 오마카세에서도 비무장지대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고추냉이(와사비) 장아찌를 만날 수 있다.

고객이 평소 접하기 힘든 희귀하고 좋은 재료를 찾아 소개하는 것은 셰프의 본분이라 생각한다. 가장 남쪽으로는 해남에서 곱창김과 배추를 찾았다. 매년 여러 망고 농장을 직접 방문해 1년 치 사용할 망고를 계약한다. 전남 영광에 굴비를 찾으러 갔다가 애플망고 농장이 있다는 소식을 접해 직접 찾아갔다. 당도 측정을 했는데 24브릭스(brix)가 나왔다. 보통 애플망고는 17~18브릭스다. 높은 당도를 가진 애플망고를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개군 지역을 지날 때 ‘집된장 팝니다’란 표시를 보고 6~8년 된 된장을 가진 집을 찾아가 항아리를 열었다. 향에 반해 사 왔는데 그걸로 된장찌개를 끓였을 때 맛과 향의 차이를 경험했다.

고향에서의 경험이 요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블루베리부터 한라봉 효소까지 6~7가지를 만들었다. 효소는 전부 나물 무침 등에 사용했다. 한라봉 효소는 그간 이스트(효모)나 발효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데 피자, 시그니처 빵 반죽에 넣어보며 재료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풀만이 내년 70주년이다.
더욱 신경 쓰고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금수장 시절 모습 / 사진=권효정 기자
앰배서더 호텔 그룹은 ‘금수장’이라는 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로 시작해 1975년 특급호텔 최초의 뷔페인 ‘더 킹스’를 열었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 뷔페 이름은 ‘킹스’다. 이메일 아이디도 ‘킹 셰프’다. 공교롭게도 많은 점에서 맞아떨어진다. 1970년생인데 내년 풀만이 70주년이 되는 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쏟아 붓고 노력할 것이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작년과는 다른, 올해와는 다른 새로운 뷔페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될 수 있는 수준의 뷔페를 목표로 한다. 즉석 요리인 ‘알 라 미뉴뜨(a la minute)’와 정찬 느낌의 요리를 준비한 뷔페를 만들어보려 한다.

카이막 빙수로 지난해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고객 니즈와 트렌드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
제주에 망고 농장이 많아졌지만, 제주 신라에 있을 당시에는 배우 노주현 씨가 운영하는 가시리 지역 망고 농장밖에 없었다. 망고 농장이 드문데 망고를 활용한 상품이 한정적이었다. 해결책은 주스나 빙수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카이막 빙수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카이막 빙수는 풀만 호텔의 헤리티지 커피 원두 에스프레소를 섞어 먹으면 색다른 빙수 맛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SNS로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다. 바빠도 매일 30분씩은 본다. 인플루언서나 식음업계 종사자들과 소통으로 니즈를 파악한다.

경력이 많을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계속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향 자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구매자는 고객이다. 그들이 SNS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선택하는 시대다. 이에 발맞춰 연구개발(R&D)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오래된 셰프들은 자기만이 갖고 있는 레시피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곳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신메뉴를 개발하고 판매하면 후배 셰프들은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는 동기가 생긴다. 고객은 새로운 요리를 접하고 경험하면서 호텔 요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호텔은 이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브랜드 가치가 향상된다. 연구개발은 셰프 생활이 끝날 때까지 계속할 것 같다.

주방 업무 강도가 센 편인데, 어떻게 버텨왔나.
셰프 생활 30년이다. 몇 번 고비가 있었다.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 딜레마에 빠진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돈 벌려고 요리를 시작해서 무작정 참았다.

존중을 못 받고 존경 못 받는 것에 반감이 컸다. 셰프가 작은 음식을 개발해도 무조건 평가하기보단 부족한 부분과 보완점을 얘기해주는 게 필요하다. 10번, 20번이 되더라도 완전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거나 조언해줘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 어려움이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리에 대한 존경과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힘든 부분들을 참을 수 있었다. 요즘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인가, 내가 가서 도움이 될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한다.

20대와 총괄 셰프가 된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20대 때는 선배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인터넷, 스마트폰이 전혀 없던 시대다. 레시피도 선배가 알려주지 않으면 수첩에 적을 수도 없고 요리를 할 수 없었다. 레시피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자기 개발을 위한 노력이 많아졌다. 육체적 어려움보다는 정신적 고뇌가 더 크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정년 후 제주로 돌아가 원 테이블 콘셉트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 전라도 청산도, 진도, 해남 등 남쪽 지역도 알아보고 있다. 텃밭에서 기른 야채와 직접 잡은 생선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하고 싶다. 고객이 식재료 들고 오면 그에 맞춰 요리해 주고, 기회가 된다면 후배 양성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정년이 연장되고 고령화로 직장인들이 오래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아직 처자식이 없어서 가능한 생각 같다.

후배 셰프에게 조언해 줄 것이 있나.
셰프를 단순한 직업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을 위해 헌신하고 무언가를 드린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주변 조언과 지도를 잘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선배·동료 얘기도 잘 듣고 고민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AI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AI를 통해 피자 이미지 하나만 올리면 만드는 방법과 레시피를 알려주는 시대가 됐다. 이제 선배에게 바라고 배울 수 있는 건 ‘노하우’밖에 없다. 이를 인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길 바란다. 자신을 개발하는 동시에 주변 사람과 소통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사자성어를 새기고 산다. ‘어떤 일에 미치광이처럼 몰두하지 않으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불광불급’ 정신으로 요리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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