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하사를 보러 갔다

한겨레21 2024. 7. 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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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고 여기를 오나, 생각했는데 결국 왔다.

그곳에 안치된 변희수 하사의 유골함을 검은 리무진 한 대와 현충원 의전 담당자가 와서 모셔갔다.

군대에서 내몰린 변 하사는 국가에 의해 희생당했다.

변희수 하사가, 그를 생각하던 내 인터뷰이가, 아니 우리 모두 잘 지내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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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내가 뭐라고 여기를 오나, 생각했는데 결국 왔다. 서울에서 추모객을 실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충북 청주에 있는 봉안당. 그곳에 안치된 변희수 하사의 유골함을 검은 리무진 한 대와 현충원 의전 담당자가 와서 모셔갔다. 조촐하고 간소했다. 마침 아는 기자를 만났고, 그는 내게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냥 보러 왔어요.” 얼버무리며 답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냥 보다니. 변희수 하사의 순직이 인정되어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는 날이었다.

국가와 희생

버스는 다시 추모객을 태우고 달렸다. 얼마나 갔을까, 밖이 소란스럽다. 펼침막과 손팻말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버스가 현충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이들이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들리지도 않을 말을 뱉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으나, 말이 나왔다. 영정을 모신 검은 리무진에는 변 하사의 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대고 확성기를 틀다니. 그나마 다행으로, 버스는 빠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짧은 외침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무슨 말인지 알 만했다. ‘어떻게 그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나.’ 기록 일을 하다보면 어르신이라 불리는 나이대의 사람을 만난다. 아흔을 훌쩍 넘겨도 한국전쟁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전쟁의 기억은 강렬하다. 한 어르신은 피란길에 큰자식을 땅에 묻었다고 했다. 옆에서 우는 둘째에게 너도 여기다 묻어버릴 거라고 독하게 굴었다. 전쟁을 통과해 만들어진 이들의 호국보훈 신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차마 이해하지 못할 삶이다. 그러니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 ‘어떻게’를 생각했다.

2021년 10월, 법원은 변희수 하사에 대한 강제전역 처분이 위법하다며 전역 취소를 판결했다. 이제 변희수 하사는 현역 군인이고,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순직으로 결정했다. 이게 ‘어떻게’의 답이지만, 이런 말을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라 했다. 현충원 안장식장에도 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국가를 위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희생이라. 군대에서 내몰린 변 하사는 국가에 의해 희생당했다. 하지만 국방부도 사과가 없으니, 이 또한 인정하진 않겠지. 현충원은 호국영령이 잠든 곳이라고 했다. 호국이건 보훈이건 외치는 까닭은 살고 싶어서다. 안전하게. ‘요즘 군대’ 운운하지만, 군은 지금도 ‘얼차려’ 받다가 사람이 죽는 곳이다(박아무개 훈련병의 명복을 빈다). 박 훈련병의 부모는, 아들의 입대날 군 관계자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을 약속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료식에 아들은 없었다. 우리의 안온은 싸워 죽고 죽이는 일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일도 지키는 일이다. 세상다움에는 평등이 있다고 믿는다. 차별 없는 평등을 지키는 데도 “피와 땀, 눈물, 때론 죽음이 있다”(송기춘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모두 잘 지내는지

답이 되진 않을 거다. ‘나쁜 사람들’만큼이나 혼잣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무엇을 보러 왔는지는 알게 됐다. 성소수자 노동을 기록할 때 만난 이가 해준 말이 있다.

“(트랜지션) 수술을 하고 나니, 변희수 하사가 더 대단한 사람 같더라고. 나는 수술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도, 통증 때문에 회사도 힘들게 다니는데. 그 사람은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자회견 하며 그렇게 다녔잖아.”

변 하사 소식이 들리면 그가 떠올랐다. 나는 잘 있는지 보러 온 거였다. 변희수 하사가, 그를 생각하던 내 인터뷰이가, 아니 우리 모두 잘 지내는지를.

희정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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