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멈춰도 급발진일 수 있나? 시청역 사고 의문점 세 가지 [뉴스+]

김희원 2024. 7.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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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 오류 생겼다가 정상화 됐을 수도
국과수 차량 분석에선 급발진 못 밝혀
“나이 문제 아냐…심신 불안 등 가능성도”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직장인 9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교통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차량 운전자가 주장하는 ‘급발진’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도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고 있다. 고령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급발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고의 의문점을 짚어본다.  

지난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현장 조사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① 차가 의지대로 멈추면 급발진이 아니다?>

목격자들은 “사고 후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고 멈췄다”면서 “급발진이 아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급발진은 차량이 운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급발진 피해를 겪은 운전자들은 ‘브레이크가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밟아도 밟히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지금까지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에서는 자동차가 급가속을 하다가 어떤 구조물을 들이받고서야 멈춰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사고에서 가해차량은 빠른 속도로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덮친 뒤, 멈추지 않고 차량 두 대를 더 들이받았다. 그런 다음에는 브레이크를 조작해 서서히 멈췄다. 이때문에 급발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말도 나왔다.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대기 중이던 차량 블랙박스에 기록된 사고 상황. 연합뉴스
하지만 김필수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차량이 사고 후 의지대로 멈췄다고 해서 급발진이 아니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급발진은 전자제어의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이상이 발생했다가 충돌로 인해 없어질 수도 있다”며 “예전 사례를 보면 어딘가에 부딪친 뒤 급발진하는 차량도 있고, 그 반대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사고처럼 정지하는 모습은 급발진 가능성을 줄이는 것으로 운전자의 주장에는 매우 불리한 정황”이라고 덧붙였다.

급발진 전문가로 불리는 박병일 자동차 정비 전문가는 “운전 미숙이면 한 군데만 들이받았을텐데, 여기저기 받았다는 얘기는 차가 제어가 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사고 후 브레이크를 밟고 멈춘 데 대해 “전자제어 이상이 생겼다가 사고 후 안전장치가 작동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밝혔다.

2일 지난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7번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 국화와 추모글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② 국과수에서 급발진 여부 판가름 난다?>

경찰은 2일 사건 브리핑에서 “급발진의 근거는 현재까지는 피의자 측 진술일 뿐”이라며 “추가 확인을 위해 차량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차량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해 경찰에 결과를 통보하게 된다.

하지만 국과수의 차량 분석 결과가 나와도 급발진 여부를 밝히기는 어렵다. 급발진이라 하더라도 ‘운전자 과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EDR은 사고 직전 5초간 차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기록하는 장치다. 급발진으로 브레이크가 듣지 않고 급가속 하면, EDR에는 차량 가속페달이 조작되고 브레이크가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운전자가 직접 밟았는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다.

2일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도에 사고 여파로 파편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자동차 제조사는 이 기록에 대해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조작했으니 그대로 기록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찰도 비슷한 결론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급발진’으로 밝혀진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강릉에서 할머니가 운전한 차량 급발진으로 손자가 사망한 도현이 사건에서도 차량 분석 결과에선 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발진 전문가들이 EDR을 ‘자동차 제조사의 면죄부’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EDR은 급발진 여부를 가리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라며 “사고 당시 영상과 차량 블랙박스, 부부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일 지난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 국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③ 고령운전자의 판단·조작 미숙?>

이번 사건은 시내 한복판에서 짧은 시간 9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였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이 모였다. 사고 경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자가 68세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고령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흘러가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65세 이상은 노인으로 분류된다. 정부도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면허를 반납하면 금전적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70세 이전은 고령운전 위험을 말할 나이가 아니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 교수는 “통계적으로 보면 75세 이상이 되어야 기기 조절이나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번 사고를 고령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 “또 운전자가 운전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운전 미숙 가능성도 적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운전자가 호텔에서 나온 뒤 길을 착각해 역주행했거나, 심신 불안정 등 어떤 이유에 의해 조작 실수 등이 있었을 수 있다”며 “운전자가 조작 실수로 사고를 내면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급발진이라고 주장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고 원인을 밝히려면 여러 정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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