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월드클래스 코리아 2024 우승한 김하림 바텐더 “분위기와 관계·시간을 팝니다”

유진우 기자 2024. 7. 3.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류기업 디아지오 주최 대회 우승자
오는 9월 세계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
“맛있는 음료 만드는 것 넘어 메시지 전달하고 싶다”

높이 던졌다가 등 뒤로 받는 병, 좌우를 바쁘게 오가며 현란하게 섞는 동작. 바(bar)가 익숙하지 않은 대중에게 바텐딩을 물어보면 화려한 기예부터 떠올린다. 이는 플레어(flair)라는 바텐딩 장르다. 1988년 영화 칵테일(Cocktails)에서 톰 크루즈는 내내 손님 눈을 사로잡는 플레어 기술을 보여줬다. 이 영화 이후 세계적으로 바 문화가 더 유행했다. 바텐더의 역할도 커졌다.

그렇다고 바텐더가 이렇게 비범한 기술만 선보이는 사람은 아니다. 고전적인 바텐더들은 오히려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칵테일을 만들 때 바텐더의 행동과 손짓을 자세히 보면 자세가 너절하지 않다. 팔꿈치가 벌어지는 반경은 좁다. 다리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손님이 바텐더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바텐더는 절도 있는 동작에 최대한 신경을 기울인다. 앞에 앉은 손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칵테일에 쏠리게 하려는 의도다.

바텐더는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내가 쌓은 기술을 매일 보여주고,
무수히 많은 손님에게 수시로 평가받습니다.


김하림 앨리스 청담 바텐더

김하림(31) 바텐더는 월드클래스 코리아 2024 우승자다.

월드클래스 코리아는 글로벌 주류기업 디아지오가 주최하는 바텐더 대회다. 국내 바텐더 대회 가운데 가장 유서가 깊고 권위도 높다.

김 바텐더는 이번 대회 내내, 마치 무림 고수처럼 빠르고 섬세한 자세로 심사위원들이 요구하는 칵테일을 만들어 냈다. 올해 월드클래스 코리아 심사위원진은 “김하림 바텐더가 주어진 시간 안에 정확하고 결점 없이 맛과 향이 완벽한 칵테일을 제조했다”고 평가했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18일 서울 앨리스 청담에서 김 바텐더를 만났다. 그는 대회를 준비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회를 앞두고 선배 바텐더와 1시간 간격으로 시간표를 짜서 매일 칵테일 만드는 훈련을 했다. 운동선수처럼 조깅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과 식단까지 정해가면서 혹독하게 연습했다. 특히 긴장하지 않는 연습을 했다. 한 번이라도 동작이 꼬이면 끝이라는 각오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창작 칵테일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 그 순간부터 두 번 더 반복했다. ‘진짜 더 이상 안 해도 되겠다’ 싶을 때 두 번 더 반복하니까 조금 여유가 생겼다. 대회 현장에서는 생각하고 말한다기보다 그냥 머릿속에 입력한 단어를 뽑아낸다는 느낌이었다.”

그래픽=손민균

바텐더에게 칵테일 만드는 기술은 기본이다. 몸으로 정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머리로 수많은 칵테일 레시피를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국제바텐더협회(IBA)가 지정한 기본 칵테일만 2021년 기준 89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같은 베이스(기주·基酒)로 써도 흔들어 만드느냐 저어서 만드느냐, 어떤 시럽을 더하고 빼느냐, 가니쉬(고명)로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기본 칵테일과 별도로 대회에서는 본인이 직접 만든 창작 칵테일까지 선보여야 한다.

김 바텐더는 대회 준비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는 “결승 주제였던 데킬라에 맞춰 월하미인이라는 선인장을 사용한 칵테일을 만들고 싶었지만, 구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했다”며 “대신 월하향(月下香)이라 불리는 비슷한 다른 꽃을 찾아 썼는데, 재료 하나를 바꾸니 전체적인 맛과 향이 달라져 원하는 칵테일을 구현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를 거듭했다. 생소하지만 조화로운 맛을 만들고, 듣도 보도 못한 칵테일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했다.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발효한 참외, 직접 딜과 카다멈(생강과 향신료)을 넣어 만든 소다, 따로 주문해 만든 도기(陶器)가 이 과정에서 나왔다.

“좋은 음료는 새로워야 한다. 그리고 손님과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야 한다. 재료는 왜 썼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같은 스토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맛있는 음료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그 음료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

김 바텐더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여행 관련 잡지를 만들다 스물일곱 살에 서울 앨리스 청담에서 바텐더 길로 들어섰다. 앨리스 청담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바다. 지난해 영국 미디어 그룹 윌리엄 리드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 바 순위 가운데 28위를 차지했다.

그는 여행 관련 글을 썼던 경험이 현재 앨리스 청담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바텐더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 맛있는 음료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분위기와 관계, 시간을 판매한다고 볼 수 있다. 손님과 소통도 중요하다. 앨리스 청담은 유명한 바라 가끔 손님 가운데 80%가 외국 분인 날도 있는데, 이럴 때 여행지에 관한 글을 썼던 경험을 살려서 ‘그 나라 잘 알아요’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손님은 편해진다.”

김 바텐더는 이어 여전히 바 문턱을 넘길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일단 들어오라’고 권했다.

“바는 그저 술집일 뿐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편하게 들어와서 즐기면 된다. 다만 ‘한번 가봤는데 별 볼 일 없더라’ 하지 마시고 바텐더들에게 기회를 두 번 이상 줬으면 좋겠다. 오늘 칵테일을 맛있게 만들지 못했던 바텐더가 내일은 잘 만들 수 있다. 그게 바가 가진 매력이다.”

김 바텐더는 오는 9월 전 세계 60여 개국 최고 바텐더들이 모이는 월드클래스 글로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올해 글로벌 대회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다.

그는 “글로벌 대회를 준비할 생각을 하면 괴롭고 두렵다”면서도 “세계 대회는 평소 바에 갇혀 있던 바텐더들이 세상에 본인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대회 요강이 나오는 즉시 국내 대회보다 강도 높게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