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ETF ‘100조 시대’ 열렸다지만, 계열사가 수조원씩 사준다

문수빈 기자 2024. 7.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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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의 숨은 조력자]①
삼성운용 13조원 중 2조원이 계열사 유동 자금
고객 자금으로 범위 넓히면 수조원 추가 예상
삼성·미래운용 “금리형 ETF 장점 때문에 투자한 것”

지난해 100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상장지수펀드(ETF)는 국민 투자 필수템이 됐다. 하지만 순수하게 개인 투자자의 자금만으로 열린 100조원 시대는 아니다. 이렇게까지 덩치를 불린 데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대형 자산운용사의 같은 금융그룹 내 계열사다. 예컨대 삼성자산운용의 ETF를 삼성생명이 사들이는 식이다.

그래픽=손민균

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자산운용의 대표 금리형 ETF인 ‘Kodex KOFR금리 액티브(이하 Kodex 코퍼)’와 ‘Kodex CD금리 액티브(이하 Kodex CD)에 삼성의 금융 계열사가 출자한 금액은 1조5816억원(유동성공급자 물량 제외)에 달했다. 두 ETF의 순자산총액(AUM)의 15.1%가 계열사에서 나온 돈이다.

이때 집계된 삼성의 금융 계열사는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화재,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삼성헤지자산운용 등 6개사다. 삼성생명이 Kodex 코퍼를 산 규모, 즉 특정 금융사의 금융거래정보가 공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 금감원은 계열사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두 ETF는 국채 등을 담보로 하는 익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금리와 양도성예금증서(CD)가 마이너스(-)로 전환되지 않는 한 손해를 보지 않는 상품이다. 연 금리를 365로 나눠 매일 하루치의 이자가 쌓이는 구조라 증권사의 대표 파킹 통장인 머니마켓펀드(MMF)와 성격이 비슷하다. 현재와 같은 고금리 상황에선 깨질 위험이 없으니 삼성자산운용이 부담 없이 계열사의 자금을 받은 것이다.

ETF 시장의 규모 자체가 커지고, 자산운용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계열사의 지원은 한 층 심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6개 삼성 계열사는 Kodex 코퍼와 Kodex CD를 합해 2조94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지난해 말보다 5000억원가량을 더 투자한 것인데, 이는 두 ETF AUM의 16.0%에 해당하는 규모다.

삼성자산운용에 이은 업계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계열사의 도움은 있었으나, 자료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만큼 크진 않았다.

지난해 말 기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금리형 ETF인 ‘TIGER KOFR금리 액티브(이하 TIGER 코퍼)’와 ‘TIGER CD금리 투자KIS(이하 TIGER CD)’에 미래에셋의 금융 계열사가 출자한 금액은 3660억원(유동성공급자 물량 제외)이다. 두 ETF AUM의 3.1% 수준이다. 1분기 말에는 이 금액이 3095억원으로 줄어 비중으로는 2.7%로 하락했다.

여기서 집계된 미래에셋의 계열사는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보험, 미래에셋캐피탈이다. 금감원의 자료 요구권이 없는 미래에셋벤처투자·미래에셋컨설팅과 글로벌X와 같은 해외 계열사 등은 이번 조사에서 제외됐다.

미래에셋 본사 전경/미래에셋 제공

이번 집계에선 고유자금 즉 계열사의 자기자금만 포함됐는데, 특별계정자금까지 범위를 넓히면 수조원은 추가될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보험사 때문이다. 보험사는 변액보험을 운용하면서 계약자가 낸 보험료 중의 일부를 수익성이 높은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는데, 10%가량은 유동성 자금으로 남겨둔다. 계약자의 환매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환매에 대응하면서 1원이라도 불리기 위해 보험사는 당장이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상품에 이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이 수단은 MMF였으나 ETF가 등장하면서 요즘엔 코퍼·CD ETF로 바뀌었다. 보험사는 고객의 자금을 그룹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굴려서 좋고, 자산운용사는 AUM을 늘릴 수 있어 일석이조인 것이다. 든든한 뒷배인 계열사가 있다 보니 십수년간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시장점유율 1·2위를 지키고 있다.

일각에선 변액보험의 10% 남짓인 유동성 자금뿐만 아니라 나머지 운용자금 중 일부도 계열 자산운용사 ETF에 투자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자산운용도 계열사로부터 수조원의 규모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계열사 자금 지원에 대해 삼성자산운용은 “계열사의 규모가 워낙 크고 관리할 유동 자산이 많아 그중 일부를 코퍼·CD ETF에 투자한 것”이라며 “해당 상품이 다른 상품군에 비해 수익성이 높고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각 회사의 여유 자금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판단해 투자한 것”이라며 “금리형 ETF 규모 중 극히 작은 2~3% 수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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