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낳은 10 대 90…‘일상의 불평등’ 때문에 절망”[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정제혁 기자 2024. 7.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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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1983년 서울시립대 도시행정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88년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발을 담근 이래 금속산업연맹(현 금속노조) 조직쟁의실장, 민주노총 조직실장, 미조직·비정규 사업실장, 연대사업국장, 사무부총장, 사회연대위원장을 지냈다. 2020년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았고, 2022년부터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하다 지난달 10일 물러났다. 학생운동·노동운동 과정에서 세 차례 구속됐다. 저서로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고교생 딸과의 3년간 산행기>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 위기가 운위되지 않은 해가 없다. 구조적 원인이 주기적 임금 인상과 승진·복지 혜택이 주어지고 노동조합 보호를 받는 1차 노동시장(대기업·정규직 사업장)과 고용 안정성·임금·복지가 취약하고 노조 보호를 받기도 힘든 2차 노동시장(비정규직·플랫폼 사업장 등)의 분단, 다시 말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것도 알려진 얘기다. 그렇다면 위기의 해법 역시 1·2차 노동시장 간 격차 해소·완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거칠게 분류하면 노동운동 내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국가와 자본을 압박해 2차 노동시장의 처우를 1차 노동시장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차 노동시장만큼은 아니더라도 2차 노동시장의 고용과 처우를 지금보다는 한결 두텁게 보장하고, 이를 위해 1차 노동시장이 연대의 손을 내밀어 2차 노동시장에 보다 많은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도록 선도하는 것이다.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60)은 후자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무던히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반향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무력감이 쌓여 민주노총에 거는 신뢰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던 것 같다. 그때부터 한 전 총장은 민주노총 울타리 바깥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노동에 적대적인 보수정부의 위원회이기도, 조선일보 지면이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의 선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이 ‘연대’라는 가치에 충실한가, 연대의 정신을 상실한 노동운동을 노동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가 회의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 2차 노동시장 종사자들의 노동 위기, 삶의 위기 앞에서 주류 노동운동이 한가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거나, 관성처럼 튀어나오는 급진적 정답이 손해보지 않으려는 대기업 정규직의 이기심을 가리는 치장물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 역시 한 전 총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일을 풀어가는 방식을 두고는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극단적으로 진영화한 사회에서 한 진영의 틀을 깨고 나와 중심을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번 틀을 깨고 나오면 탈주의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기존 진영에선 척력이, 반대 진영에선 인력이 작용한다. 이런 힘들에 버티면서 중심을 잡으려면 초인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하거니와, 그렇지 못해 반대 진영의 극단으로 가버린 사례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향신문 사무실에서 한 전 총장을 만났다.

조선일보·전태일재단 ‘노동 기획’ 혼란…이사장과 내가 물러나면서 마무리
하청노조에 교섭권 생기더라도 성과급 놓고 원·하청 노조 간 ‘이익 갈등’ 불가피
공정거래법·근로기준법 사이 영세 상인 등 문제…‘노란봉투법’과 별개로 풀 필요
사회적 대타협 핵심고리는 ‘상속세’…마련된 재원, 2차 노동시장으로 돌려야
1차 노동시장 때리는 데서 멈춘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아직 평가할 게 없다

- 근황이 어떤가요.

“조선일보·전태일재단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 기획’과 관련해 재단 내 혼란이 있었고, 이덕우 이사장과 제가 지난 10일자로 재단에서 동시에 그만두면서 마무리했습니다.”

- 정부가 꾸린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 공동단장이시죠.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약자 지원법’을 만들라고 지시해서 고용노동부가 꾸린 건데, 법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8월까지 결론을 낼 예정입니다.”

- ‘노동약자’가 무엇입니까.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여기에다 영세 사업주, 영세 상인들도 노동약자라고 봐요.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노동3권, 공정거래법으로는 풀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방송작가나 프리랜서 중에는 노동에 대한 적정한 대가나 노동시간을 원하면서도 ‘노동자성 인정받는 거 싫다’고 하는 사람도 꽤 된단 말이에요. 이들에게 근로기준법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거죠. 사업주의 지불능력 등 문제 때문에 개별 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걸 국가와 사회가 나서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 교섭권 보장 등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접근법과는 다르네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하청노조에 교섭권을 준다고 해도 원청이 교섭을 안 받으면 방법이 없어요. 파업을 했다고 쳐요. 그럼 원청이 다음에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해버릴 텐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지금은 원·하청 교섭이 열리면 다 풀릴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원·하청 교섭이 열리면 원·하청 노조가 첨예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어요. 성과급 배분 문제가 걸리잖아요. 하청노조도 성과급을 나눠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원·하청 노동자 간 이익 갈등이 생기는 거죠. 원·하청 노동자가 그런 식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게 맞냐는 문제의식이 있어요. 그런 식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프로세스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 사회적 대타협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교섭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계속 넓혀 나가야죠. 다만 선의로 만든 법이 현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노동약자에게 교섭권을 주는 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풀리지 않는 것도 봐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지금 원청의 사용자성을 얘기하는 사업장은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 하청 사업장이에요. 그렇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더 많은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또 공정거래법과 근로기준법 사이에 있는 영세 사업주들, 영세 상인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노란봉투법과는 별개로 풀어야 할 문제라는 거죠.”

-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지난해 10대 재벌 총수들의 배당금이 8196억원이에요. 1조원이 안 돼요. 근데 10대 재벌 성과급은 10조원이 훌쩍 넘어요. 사회적 총액으로는 재벌 총수 배당금의 10배가 넘어요. 대기업 정규직들은 성과급 안 받아도 우리 사회 상위 10%예요. 독일은 국민소득 5만달러인데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10만달러를 받아요. 독일의 2차 노동시장은 4만달러를 받고요.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인데 자동차 공장 정규직들이 10만달러를 받는 거예요. 한국의 2차 노동시장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니까 2만달러, 3만달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독일이 4만달러와 10만달러의 격차라고 한다면, 한국은 2만달러와 10만달러의 격차인 거죠.”

- 하청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되면 원·하청 이익 갈등이 생길 거라고 했는데, 그걸 푸는 건 노동운동의 몫일 텐데요.

“지금은 불가능해요. 양노총 주력 조합원들이 1차 노동시장의 정규직들이에요. 지금도 양노총이 마음만 먹으면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원청노조를 중심으로 둔 산별노조, 아니면 양노총이 이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면서 싸우면 돼요. 현장 핑계를 대고 안 하는 거죠. 그런데 하청노조에 교섭권이 생겼다고 산별노조·양노총이 하청노조 편들면서 성과급 나누라고 얘기할 수 있겠냐는 거죠. 그 문제는 모르는 척 외면하면서 하청의 교섭권 확보 얘기만 하는 건 비겁한 거예요. 솔직하지 못한 거죠.”

그의 말이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때 실력이 검증된 7~8년차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을 전교조가 반대했잖아요. 지금도 공공운수노조 유명 사업장의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데, 원청노조가 그걸 반대해요.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져 하청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돼도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벌어질 거예요.”

-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1차 노동시장 정규직들이 연대라든가 측은지심을 잃어버리고 임금 기계가 되어 버린 것부터 바꿔내는 거대한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건 노동운동의 힘으로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런 얘기를 꺼내는 순간 주력 조합원들이 ‘무슨 개소리냐’ 할 거예요. 그래서 사회적 압력이 필요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사회화시켜야 해요.”

- 노동운동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였는데, 한 전 총장은 질 좋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층, 주변부, 외부자 이런 게 2차 노동시장을 표현하는 언어들인데 당사자들은 이렇게 호명되는 걸 싫어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려고 한국에 몰려오잖아요. 이 일자리가 다른 나라 노동자에게는 나쁜 일자리가 아니라는 거죠. 2차 노동시장 노동자들도 들어보면 3~4년에 한 번은 베트남이든 태국이든 일본이든 여행을 다녀올 수 있고, 비정규직도 자가용을 할부 끊어서 몰 수 있고요. 그런데도 동창회에 가서 자기 자식이 비정규직이다, 프리랜서다 이러면 기가 죽어요. 저는 이게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의 일상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봐요.”

- 일상의 불평등이요?

“불평등을 얘기할 때 1 대 99가 있고 10 대 90이 있어요. 1 대 99는 구조의 불평등이고, 10 대 90은 일상의 불평등이지요.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모든 노동자의 의식주 자체가 어려웠기에 1 대 99 불평등 해소가 중요한 사회 문제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최상위 1%와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의 삶에서 비교가 되는 10 대 90 불평등 때문에 화가 나고 절망하는 겁니다. 아이의 장난감, 학용품, 여행지까지 갈라놓은 불평등인 거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든 일상의 불평등입니다.”

- 비정규직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까.

“불가능하죠.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고용과 임금과 복지 등에서 균등하게 맞춰야 하고 그러려면 기존 정규직의 양보와 나눔의 연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해요.”

- 항시 해고 위험이 있는 비정규직이 온전히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나도 쉽게 해고하려고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2차 노동시장의 많은 사업주는 진심으로 직원 처우를 고민하고 있어요. 2차 노동시장의 상당수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 자체가 없기도 하고요. 그들의 다수는 해고 위험 때문에 노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노조를 해봐야 얻을 것이 없다는 이유가 더 커요.”

-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지금 노동 문제, 일자리 문제는 노사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풀려요. 1차 노동시장에서 노사 갈등은 없어요. 재벌 총수가 많은 배당금을 가져가기 위해 정규직들에게 성과급을 주는 거죠. 정규직 입장에선 성과급을 그렇게 받으니까 재벌 총수가 배당금을 많이 받아가도 불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1차 노동시장 노사는 자기들끼리 윈원하고 있다, 상생을 넘어 동거하고 있다고 봐요. 반면 원·하청 기업, 원·하청 노동자, 배달 라이더 요금 같은 생산자·유통인·소비자, 세대, 젠더 갈등이 중첩된 다중 갈등이 있어요. 고용과 일자리 문제는 이 당사자들이 다 참여하는 테이블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봐요. 이 테이블에서 유럽에서 하듯이 4~5년 걸려서라도 사회적 논쟁을 붙이고 격하게 토론도 하고 타협도 하면서 답을 내놔야죠. 나는 사회적 대타협의 핵심 고리는 상속세라고 봐요.”

- 상속세 인하는 보수진영의 의제 아닙니까.

“양노총이 주도하는 사회적 대타협은 불가능해요. 주력 조합원들이 현 상태에서 얻는 것이 더 많거든요. 결국 사회적 압박이 노사정을 향해야 합니다. 재벌은 1차 노동시장에서 초과이윤을 걷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소비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다시 말해 전 국민의 땀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초과이윤 일부는 정규직 노사 너희들끼리 알아서 나눠 먹되 일정 부분 이상은 세금으로 사회에 환원하라는 거죠. 그러면 상속세 인하하고 차등의결권 줘서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안정적으로 경영권·소유권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죠.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2차 노동시장으로 돌리는 겁니다. 물론 1차 노동시장에 있는 정규직들에게 돌아갈 사회적 인센티브도 고민해야 되겠죠.”

- 비정규직 기간 연장도 필요하다고 보세요.

“기간제 노동자들과 얘기해보면 절반 정도는 기간을 늘려 계속 일하고 싶다 하고, 절반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되면 좋겠다고 해요. 그냥 기존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데 2년이 되면 사표 내고 다른 기간제 일자리 알아봐야 하는 게 불안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죠.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기간 연장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봐요.”

- 현 정부에서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에 참여 중이고,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했고, 경사노위 공익위원으로도 지원했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하는 그동안의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지금 노동운동은 노동계급을 해체하고 있는 일상의 불평등 문제가 현실에서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 진지하게 분석하며 요구하고 투쟁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양노총 주력 조합원들은 투쟁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정규직 노조는 이제 불법파업 안 합니다. 그런 지 10년도 훌쩍 넘었어요. 2차 노동시장 문제와 관련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고요.”

- 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기대가 있어 그러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라서가 아니라 정부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만나서 떠들어야죠.”

-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노동개혁의 핵심은 2차 노동시장을 안아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현 정부는 1차 노동시장의 조직된 노동을 때리는 데서 멈췄어요. 이제라도 2차 노동시장 문제를 풀려고 하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결론이 나온 게 없어서 아직까지는 평가할 게 없어요.”

한 전 총장의 주장은 매우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에서 보듯 비정규직 일자리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인식은 노동 유연화를 정당화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쉽다.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노동약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노란봉투법 입법을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되게끔 하는 효과를 갖는다. 한 전 총장의 사회적 대타협론은, 노동자는 노조로 뭉쳐야 한다는 자강의 논리, 특히 노동약자의 교섭권 확보를 위한 제도 확보 운동과 단단하게 묶이지 않으면 시혜적 상층 교섭 문제로 왜소화할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상위 10%로 설정한 그의 ‘10 대 90’의 불평등 구조론은 불합리한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흐리고, 노동시장 문제를 노·노 갈등 문제로 치환할 위험성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장이 노동 유연화를 추진하고,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대기업·정규직 불문하고 노조·투쟁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정부·보수언론과 협업하는 모습이 저런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격렬한 논쟁이 불가피한 주제들이다. 어쩌면 한 전 총장 의도도 그것인지 모른다. 자신을 불쏘시개 삼아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는 것. 그럼으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오랜 무기력과 침묵과 회피의 빙벽을 깨는 것. 한 전 총장은 노동운동 인생 전체를 건 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제혁 논설위원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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