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생] ‘1000만배우’ 화려한 무대뒤 자연인으로…삶에 새 활력

황지원 기자 2024. 7.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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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생] 전원생활에 푹 빠진 명품 배우 정동환
40대 중반 번잡한 도시 떠나 광주에 정착
황토 덧댄 목조주택 자연친화 분위기 물씬
텃밭 가꾸며 수확 재미 쏠쏠…건강은 ‘덤’
정원관리사 취득해 노년의 새 즐거움 찾아
“연기, 어렵지만 행복…관객 계속 만나고파”
배우 정동환씨는 경기 광주에 목조주택을 짓고 약 30년째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정씨는 마당에서 호박·고추 등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주장한 것이다. 매일 10시간씩 꼬박 3년을 투자해야 비로소 1만 시간이 채워진다.

‘겨울연가’ ‘야인시대’ ‘상속자들’ 등 130여편이 넘는 드라마와 연극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 정동환씨(74)는 연극부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을 연기에 쏟아부었다. ‘대배우’ 정씨를 경기 광주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만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광주에 살기 시작했어요. 40대 중반밖에 안됐고 드라마도 많이 하고 있을 때지만 하루빨리 번잡한 도시를 떠나고 싶었어요. 서울 출신 아내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적응해 들판에서 산나물을 뜯어다 요리해주더라고요.”

지금 살고 있는 목조 주택은 1997년 지었다. 외벽은 돌과 흙을 섞어 쌓아 만들어 멋을 더했고 집 안 벽에도 황토를 발라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줬다. 전원에 살면서 그에겐 농사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집 마당에 텃밭을 두고 상추를 키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몸을 계속 움직이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히말라야에 4번이나 다녀왔을 만큼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정씨는 2021년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한국산림아카데미 정원최고경영자과정을 수강하며 1년 동안 정원과 산에 대해 배운 것이다. 2021년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라는 연극에 출연했던 그에게 ‘정원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말한 지인의 권유 덕분이었다. 공연이 있는 날에도 오전엔 지방에서 열리는 수업을 듣고 오후엔 서울로 가 무대에 오르며 열심히 참여했다. 올초엔 과정 수료자를 대상으로 한 정원관리사 자격시험도 합격했다.

“수업 때 배운 걸 활용해서 꾸며보려고 집 마당을 다 뒤집어놓은 상태예요. 요즘엔 시간이 없어서 정리를 못하니 마당이 엉망이네요. 전 이런 상태도 좋아하긴 합니다.”

정씨가 정원을 가꿀 새도 없이 바쁜 이유는 서울 대학로 연극 ‘햄릿’에 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 역을 맡아 일주일에 4번 이상 무대에 오른다. 그가 햄릿에 처음 참여한 건 1977년이었다. 그때보다 연기력에 만족을 느끼냐는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최한규 대통령 역할을 맡은 정동환씨. 플러스엠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배역에 깊이 들어갈수록 찾아내야 할 게 많이 보이죠. 연극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에요. 그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죠.”

그의 서재에는 ‘고통을 용서하자’라는 글귀가 벽에 붙어 있다. 좋아하는 연기를 하기 위해 젊은 시절 여러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 재학 시절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일본 오키나와 사탕수수밭에서 계절근로자로 일한 적도 있었다.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해외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다른 나라로 이끌었다.

“일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더군요. 베트남전 참전으로 국가유공자도 됐고요.”

연극에서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힌 정씨는 2000년대부턴 송혜교·아이유·이민호 등 한류스타들의 아버지 역할을 맡아왔다. 해외여행을 갔을 때 그를 알아보는 드라마 팬들을 만나는 즐거운 경험도 여러번 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선 최한규 대통령 역을 맡으며 극에 무게감을 더했고, 1000만 배우에도 등극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건 그를 찾는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고 믿는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대스타가 되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 이런 건 바라지 않았어요. 그저 계속 무대에 설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목표를 이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펼쳐나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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