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콩나물 강사’ ‘밥풀때기 학인’

김한수 기자 2024. 7. 3.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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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스님 제자들이 전하는 40~50년 전 강원 풍경
지관 스님이 1999년 가산불교대사림 1권 출간 후 기뻐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지난주 서울 창경궁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찾은 것은 작업 착수 42년만에 완간된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이하 연구원)은 현대 한국 불교의 대강백(大講伯)으로 불린 지관(智冠·1932~2012) 스님이 1991년 설립해 입적 때까지 한국 불교 연구의 요람으로 키워온 기관입니다. 대표적 연구 성과가 최근 20권으로 완간된 ‘대사림’이었지요. 지난주 신문에 소개했듯 표제어만 11만 9784개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업이었습니다.

지관 스님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티셔츠를 입은 모습. 엄격한 학승이었던 지관 스님이지만 월드컵 당시엔 직접 붉은 티셔츠를 사서 연구원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내 지관 스님의 집무실에 놓인 사진이다. /김한수 기자

경북 영일 출신인 스님은 이미 20대에 해인사 강주(講主)를 맡을 정도로 학문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생전에 “조계종 스님의 절반은 그의 제자이거나 제자의 제자일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습니다. 동국대 총장, 조계종 총무원장도 역임했지만 스님은 평생 공부와 연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날 연구원에서는 절집안에서 ‘공부에 진심이었던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관 스님은 ‘사이비 지식인 감별법’을 제시하고 제자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했다고 합니다. 신문에도 ‘이런 사람들은 연구원 출입을 제한했다’고 간단히 소개했습니다만 실제 지관 스님은 사이비 지식인에 대해서는 매우 경계했다고 합니다. 지관 스님의 ‘사이비 지식인 감별법’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아는 것 없이 아는 척 하는 이, 즉 공부 안 하고 아는 척 하는 사람. 둘째는 동료 집단을 외부에 배타적으로 비평해서 명예를 구하는 이, 셋째는 전공하는 외에 세상 모든 일을 아는 척하는 사람. 네번째 유형은 베풀 줄 모르고 인색한 사람. 마지막 다섯번째는 ‘인정 본능에 목말라 주기적으로 언론에 자기를 뽐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이’라고 합니다.

서울 창경궁로 가산불교문화연구원 내 지관 스님의 집무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가산연구원 연구실장 고옥 스님은 “지관 스님은 사이비 지식인의 다섯 가지 유형을 제시하고는 ‘이 가운데 하나만 걸리는 사람은 교화(敎化)해서 함께하지만, 두 가지가 걸리는 사람은 일단 거리를 두고, 셋 이상인 사람은 거래를 끊어라. 가산(연구원)에 출입도 시키지 말라’고 하시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고옥 스님은 “사실 이 조건들은 율장(律藏)에 있는 내용인데, 스님이 현대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명을 듣는데, 처음엔 재미있다가 이내 등허리가 서늘해졌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역으로 해석하면 지관 스님이 평생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았던 신조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즉 ‘모르는 것은 아는 척하지 않고’ ‘동료 집단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하고’ ‘전공 분야 외에는 아는 척하지 않고’ ‘베풂에 인색하지 않고’ ‘언론에 자기를 뽐내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는 뜻이겠지요.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보관된 지관 스님 자료. /김한수 기자

1970~80년대 전통 강원(講院)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은 것은 망외(望外)의 소득이었습니다.

‘파리똥 강사’라는 표현은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과거 사찰의 전통 강원(講院)은 한문 경전을 원어로 강독했지요. 한문 원전에는 마침표, 쉼표 같은 문장 부호, 표점(標點)이 없습니다. 아무 부호가 없는 가운데 문맥에 따라 띄어 읽는 것이 실력이지요. 그런데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강사는 미리 경전에 작은 점을 찍어두어 끊어 읽기 쉽도록 표시를 했답니다. 문제는 가끔 파리가 경전에 앉아서 똥을 누고 가는 것이죠. 그러면 이 점이 문장 표시인지, 파리똥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거죠. 끊어 읽는 위치에 따라 해석은 엉망이 될 수 밖에 없겠지요.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는 것이죠. 똑똑한 학생들이 실력 없는 선생을 놀리는 말 중의 하나가 ‘파리똥 강사’였답니다.

지관 스님이 '가산불교대사림' 작업에 착수한 1982년 6월의 금전출납부. 지관 스님은 공금 관리를 직접 꼼꼼히 챙겼다. /김한수 기자

‘콩나물 강사’도 있었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에선 먹을 것이 크게 부족했다고 합니다. 경전 공부도 어려운데 먹는 것은 김치 반찬 한 가지였다지요. 당시에 제일 맛있는 반찬이 콩나물이었다네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강사들은 방에 콩나물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키워 반찬으로 제공했답니다. 그러니 ‘어떤 강사가 콩나물 많이 준다’고 소문이 나면 그 강사가 학문이 뛰어난지 여부는 관계없이 ‘잘 먹고 싶은’ 학생들이 몰렸다는 것이죠. 그러면 ‘실력 없는 강사와 실력 없는 학인(學人)이 즐겁게 맛있게 먹고 졸업하고’ 했다는 것이죠. 역시 똑똑한 학생들이 실력 없는 강사를 평하는 은어였다고 합니다.

강사만 머리를 썼을까요? 당연히 꾀를 부리는 학생도 있었겠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산통(算筒) 조작’이었답니다. 전통 강원의 ‘논강(論講)’ 수업은 학생이 주제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이랍니다. 발표자를 정하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미리 순서를 정해놓지 않고 논강 전날 추첨하는데, 그 방식이 산통입니다. 산통은 원래 점을 칠 때 쓰는 도구입니다. 대나무를 잘라서 원통을 만들어 한쪽에 작은 구멍을 내고 원통 안에 학생 수만큼 이쑤시개처럼 가늘게 자른 댓살을 넣는다고 합니다. 이 댓살은 ‘산가지’라고 부르지요. 각각의 산가지에는 학생들의 법명이나 표지를 해놓고요. 이 산통을 흔들어서 거꾸로 들었을 때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산가지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으면 그 다음날 발표를 맡게 되는 식이지요. 공평한 추첨 방식입니다. 강사 스님이 보는 가운데 발표하고 비판도 받고 논쟁도 해야하니 부담이 컸겠지요. 또 언제 자기가 발표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평소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잔꾀를 부리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요. 자기 이름을 적은 댓살을 산통에 넣을 때 밥풀을 살짝 붙여서 구멍으로 잘 빠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학생들이 있었답니다. 이런 학생은 한 번도 발표를 맡지 않겠지요? 그렇지 않았답니다. 횟수를 정해놓고 그 안에 한번도 걸리지 않은 학생은 무조건 발표를 시켰다네요.

‘파리똥’ ‘콩나물’ ‘산통’ 모두 이제는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지금은 출가자 자체가 급감해 콩나물 아니라 그 어떤 산해진미를 제공해도 올 학생이 태부족하니까요. 그렇지만 그 당시의 치열했던 스승과 제자의 학구열을 느끼기엔 충분했습니다. 또한 그런 열의가 지관 스님 사후에도 끊어지지 않고 마침내 대사림 완간이란 결과로 이어진 것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대사림 취재하러 갔다가 ‘덤’을 많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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