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1] 군 미필자가 장군에게 호통치는 분단국가

김규나 소설가 2024. 7. 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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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터로 ‘무죄추정’

나는 사람들 앞에서 엄중한 심문과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그의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다.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권리인 상호 간의 인격 존중, 심지어 자유까지도 맡겨놓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외투처럼 되었다는 사실에 피고인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피고인의 그 두려움, 극심한 좌절감, 처절한 외로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연약한 감정들 대신 굳건한 의무감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스콧 터로 ‘무죄추정’ 중에서

요즘은 경찰과 검찰도 피의자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교사도 개인 감정을 앞세워 아이들에게 교실 밖에 나가 서 있어라, 벌주지 못한다. 그런 일이 드러나면 부모와 인권위원회가 가만있지 않는다. 그런데 국회의원 앞에 서는 증인에게는 최소한의 인권이나 자기 보호 권리조차 없는 모양이다.

소설 속 수석 부장 검사 러스티는 재판정에 설 때마다 국가를 대변한다는 자부심과 정의감으로 피고인을 매섭게 몰아세웠다. 그런데 그 자신이 살인 혐의를 받고 피의자석에 앉는 사건이 벌어진다. 정황상 범죄를 확신한 동료 검사들은 법정에서 러스티를 가혹할 만큼 몰아붙인다. 그제야 러스티는 자신이 심문할 때 피의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돌아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권력이 하늘을 찌른다. 지난 6월 21일, 그는 증인으로 나온 군 장성들에게 입 다물라, 일어나라, 나가라, 반성하라, 명령하고 호통쳤다. 그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에 빠져 있었을까? 그러나 사안을 조사하는 과정이었을 뿐, 그에겐 검사나 판사처럼 죄의 유무를 추궁하고 판결할 자격은 없었다. 더구나 증인들은 나라와 국민을 지킨다는 자긍심으로 일생을 바친 군인들이었다.

법사위원장은 1989년 주한 미 대사관저를 점거, 폭탄 투척과 방화 미수로 징역 2년을 살았고 그 때문에 군대에 가지 못했다. 그가 근엄한 표정으로 “사단장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제가 보기엔 부끄럽고 비굴한 군인일 뿐이에요”라며 현역 장군을 비난하는 장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병역 의무를 마친 사람만 피선거권을 갖게 하는 법이 생길 리는 없겠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서 군인이 어떤 이유로든 전과자나 군 미필자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일이 허용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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