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교육·미래 먹거리 문제엔 협치하자
안 좋은 기록 쏟아내며 극한 대치
순항하던 AI·반도체 법안 등 발목
정쟁 접고 국민의 분노 덜어줘야
정치권이 여야 극한 대치로 꽉 막힌 가운데 미약하나마 협치의 싹이 꿈틀거리는 곳도 있다.
야당인 민주당이 반도체 산업에 10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통 큰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반도체 기업 세액공제 일몰 기한을 2024년에서 2030년으로 6년 연장하는 등의 법안을 발의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반도체는 4차산업 혁명 시대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국가안보에도 직결된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이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대 기로에 직면해 있다. 여야가 협치를 통해 반도체 입법을 이뤄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가 함께하는 국회 인공지능(AI) 포럼이 최근 창립됐다는 소식도 반가웠다. 이 포럼은 국회, 기업, 정부, 시민사회 단체가 협력해 AI 기술 발전과 응용을 촉진하고, AI에 대한 올바른 사회문화적 가치를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지만 여의도가 마주한 정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우리 세상은 빛이 없고 어둠이 빛을 참칭한다.”
요즘 인기 있는 넷플릭스 정치드라마 ‘돌풍’에서 묘사된 여의도 상황의 실사판이다.
본회의로 가는 길목인 법제사법위원회를 민주당이 장악하면서 ‘거야 입법 독주→대통령 거부권’ 악순환은 22대 국회의 매뉴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개원 한 달간 본회의에 부의된 5개 법안 모두 거대 야당이 단독 처리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여야 협치 정신이 담긴 각종 관례도 이제 여의도에선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도 아니다. 가까스로 열린 국회 여러 상임위가 첫 회의 곳곳에서 여야 의원들의 고성과 막말로 얼룩진 건 최악의 정쟁국회 예고편이다.
특히 AI법안을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야당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 김 위원장 자진사퇴 등이 모든 이슈를 삼켜 버렸다. 그러다 보니 과방위에서 AI 기본법은 제대로 입도 떼지 못하고 있다. AI 글로벌 경쟁을 위한 골든타임이 맥없이 흘러가자 업계에선 과방위가 과학 기술과 방송 분야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상공회의소는 국회 입법 없이 정부 정책만으로 경제활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 개선과제를 건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문제를 돌파해줘야 할 여야의 미래 리더십도 암담하다. 여야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강조하는 메시지에서 미래를 위한 의제를 찾는 건 어렵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는 “배신자”, “학교폭력 가해자”와 같은 극언만 쏟아진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명비어천가’만 난무한다.
아내가 분노의 청소를 시작할 때 아빠의 대응법은 두 가지라는 농담이 있다. ①아빠도 같이 청소를 시작해서 아내의 분노를 덜어준다. ②가능한 한 아내의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이 분노할 때 여의도 정치인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뭘까. 어설프더라도 빨리 옷을 갈아입고 청소하는 시늉이라도 해서 국민의 분노를 덜어주는 게 정답이다.
적어도 백년대계인 교육,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와 AI 분야에서만큼은 여야가 정쟁을 중단하고 협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천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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