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배 값 천정부지...고물가 주범은 과일

6월 사과 63%·배 139% 급등
유독 비싼건 수입 안되기 때문
사과 수입협상 벌이고 있지만
검역 내세워 시간끌기로 일관
농민반발 의식, 정부도 소극적

물가 하락세에도 유독 사과와 배 등 과일값이 물가안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부진이 이어지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과일값이 변수가 되는 현상이 올들어 반복되고 있다. 과일 가운데 두 품목의 가격 상승률이 유독 높게 유지되는 것은 수입이 불가능해서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검역 협상을 이유로 들며 수입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산물 교역은 상대국과 협의해야 하는 외교 문제인 만큼 수입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해충 유입 우려로 검역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과일 가격 상승률은 올해 들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신선과실 물가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올 1월 28.5%에서 2월 41.2%로 치솟았다. 이후 3월 40.9%, 4월 38.7%, 5월 39.5%로 각각 집계된 데 이어 지난달 31.3%를 기록했다. 2월부터는 30% 이상의 수준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과일 가운데 사과와 배의 가격 상승세가 특히 강하다. 사과 가격 상승률은 올 1월 56.8%, 2월 71%, 3월 88.2%, 4월 80.8%, 5월 80.4% 등 꾸준히 높게 나타났고 지난달(63.1%)에도 60%를 넘겼다.

배 가격은 더 큰 폭으로 뛰었다. 배 가격 상승률은 1월 41.2%에서 3월 87.8%로 급등한 데 그치지 않고 4월(102.9%) 100%를 뛰어넘었다. 이후 5월 126.3%, 지난달 139.6%를 각각 기록하며 역대 최고 상승률을 경신했다.

사과·배 가격이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 것은 두 품목은 수입이 전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전혀 없는 탓에, 기상 악화나 병해충의 영향으로 국내 공급이 줄면 그 여파가 그대로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과의 경우 수입을 하려면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SPS)에 따라 총 8단계의 검역 단계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지중해과실파리 등 외래 해충과 과수화상병, 사과빗자루병의 유입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역이 여러 단계로 이뤄졌다는 것이 농식품부 설명이다.

현재 농식품부는 11개국과 사과 수입 검역 협상을 진행 중이다. 가장 진도가 많이 나간 국가는 일본이며 5단계까지 검역이 진행됐다. 일본은 지난 1992년 검역 협상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2010∼2015년 위험 분석을 하다가 중단한 상태다.

사과와 배는 수입 물량이 없어 국내 신규 물량이 시장에 풀리기 전까지는 가격 강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사과는 조생종인 츠가루(아오리)가 이달 말부터 출하된다. 배는 다음달부터 햇과일이 나올 예정이다.

햇과일 출하로 과일 가격이 일부 안정되더라도 물가 불안 요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황경임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7월에는 태풍이나 폭우 등 날씨에 따른 불확실성이 있고 환율과 유가 등 외부 변수도 있다”며 “물가 상승률이 다시 반등할 요인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식품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하반기 농산물·식품 원료 51종에 할당 관세를 적용하고 배추·무의 비축과 방출을 통해 여름철 수급 불안 가능성에 대응할 방침이다.

하지만 사과와 배의 수입을 개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역대 경제 부총리·장관 정책 간담회’에서도 사과·배를 중심으로 한 농산물 가격 급등에 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고물가를 해소하려면 농산물 수입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왜 그 얘기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과와 배 가격이 높은 만큼 수입을 해야 한다”면서 “농민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사과와 배 이외의 대체 품목은 이미 많이 수입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반발에 대한 우려 등)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방안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