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군대는 죽으라는 지시를 해도 따라야 한다’는 오해

기자 2024. 7. 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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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다. 시대와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는 곳에서 만들어진 제도를 그대로 들여와 운용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제도는 그 발생의 원인이 되는 특수한 환경을 전제로 하고, 그 본질적 측면은 글이나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지(暗默知)의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이입된 제도는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이 없는 한,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열화(劣化)된 형태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작년 7월 수해 실종자 수색 중에 벌어진 이른바 ‘채 상병 사건’ 당시의 사단장이었던 해병 소장 임성근은 지난 6월10일 경북지방경찰청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또 “군대는 죽으라는 지시를 해도 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언뜻 보기에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주장이고, 당연히 적지 않은 비판이 뒤따랐다.

군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가 대한민국 국군의 사명이라고 규정한다(제5조 제2항). 즉 군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 주권의 완전성과 영토의 안정성을 지키는 것을 그 임무로 한다. 한편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군의 임무가 아니라, 경찰의 직무에 속한다(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 제1호). 강도나 도둑이 국군의 주적(主敵)일 수는 없는 것이다.

군이 보유한 조직과 장비의 유기적 결합체인 군사력을 운용하기 위한 수단이 명령이다. 적이라는 상대방이 존재하는 전장의 환경과 정세는 항상 변화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명령에는 효율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명령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범죄와 같이 명백하게 위법한 것을 지시하는 명령은 있을 수 없다(외재적 한계). 또한 명령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에 반하는 것일 수도 없다(내재적 한계).

전투는 본질적으로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해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군에선 매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 자체를 지시하는 것은 명령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 본연의 의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에 반하기 때문이다. 즉 명령에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있어도, 십사영생(十死零生)은 있을 수 없다. 자살 공격으로 널리 알려진 가미카제(神風)가 표면적으로는 자발적인 지원의 형식을 취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투와 같은 군사 활동에서는 실패라는 결과나 그 과정에서의 실수만으로 처벌되지는 않는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는 말처럼 전쟁에는 언제나 승리와 패배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해 군이 구조·복구 등을 실시하는 이른바 대민지원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대민지원은 군의 본질적 임무가 아니며, 장병들은 재해구조의 전문가도 아니다. 특히 수색자 구조는 징집된 병사들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존재하는 임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장병들의 생명·신체에 위해가 발생했고, 이것이 지휘관의 과실 즉 주의의무 태만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헌정사의 상당 부분은 군부 주도의 강압적 철권통치라는 비극적 경험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군의 구성원과 국가의 관계, 명령의 한계와 같은 군사 제도의 본질적 사항은 별다른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까라면 까’라는 정체불명의 단순·저열한 표현을 군사 제도의 전부라고 오인하기에 이르렀다. 임성근의 “군대는 죽으라는 지시를 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오해에 기인한 것이다.

최종호 변호사

최종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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