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AI시대의 천국과 지옥, 그리고 민주주의

정대성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 2024. 7. 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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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상이 온통 AI(인공지능) 이야기다. 자동차나 스마트폰, 가전제품에 속속들이 접목되며 AI가 일상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AI 소재 영화와 드라마도 쏟아지고 AI 가수가 인간 아티스트와 팬덤을 놓고 경쟁하는 중이다. 미술전에서 AI가 상을 받고 감독처럼 영화까지 뚝딱 만들어낸다. 짧은 미완성 메모를 토대로 AI가 ‘베토벤 10번 교향곡’을 완성한 것도 큰 관심을 끌었다. 가히 ‘AI 천국’이라 할 만하다.

SF영화야 오래전부터 할리우드 단골 장르고, 로봇 창조라는 인간의 상상력도 일찌감치 나래를 폈다. SF소설의 효시라는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1818년에 나왔으며, 로봇이 인간을 돕거나 위협한다는 설정은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숱하게 변주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상력이 현실 속으로 성큼 들어온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의 준말로 사용되던 AI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확실히 굳어졌다. 이후 AI라는 말이 도처에 출몰했지만, 피부로 와닿는 사건은 2022년 오픈 AI 기반의 챗GPT 열풍이었다. 너도나도 실제로 사용해보며 AI의 능력과 실용 가능성이 제대로 각인되었다. AI는 사피엔스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강력한 요인으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분야가 AI와 함께 급속히 변화하는 중인 것이다.

대학도 그렇다. 과학기술과 동떨어져 보이는 역사 전공수업에서도 ‘AI시대 역사학과 역사학자’의 역할을 짚어보게 된다. AI가 쓴 역사책도 머지않아 나올 듯하다. 영화 관련 강의에서는 AI 감독이라는 영화사 초유의 격변을 성찰해야 하고, 음악 과목은 제목과 가사와 악기나 곡 스타일을 넣어주면 AI가 바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예술(가)의 역할과 본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보이던 예술과 지적 생산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이제 ‘위드 AI’는 인류 역사의 불가피한 흐름이고 AI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의 지적, 제도적 총화인 민주주의도 이런 흐름에 직면했다. 그 결과 ‘AI와 민주주의’ 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AI가 과연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고,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다. 진영은 크게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AI 기술의 도움으로 시민이 의견을 더 잘 표현해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AI 기술의 상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기업과 개발자가 대표적인 그룹이다. ‘AI의 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일부 부정적인 요소가 없지 않으나 AI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낙관한다.

부정론도 만만치 않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소통은 고사하고 각종 대립과 혐오를 조장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듯, 거대 기업이 선도하는 AI 기술 역시 인간들의 갈등과 혐오를 심화해 ‘극단의 세계’를 낳을 것이라고 비관한다. 인류는 이미 빅테크 전체주의 체제를 살고 있으며, AI가 인간을 노예화할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경고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떠올리게 하는 부정론의 끝은 ‘AI 지옥’이다.

로봇이 인간과 평화롭게 함께하는 유토피아를 꿈꾸거나 반대로 인간을 위협하고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한 지 오래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AI가 민주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공히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삶과 민주주의가 AI와 더불어 어떻게 변할지, 혹은 변해야 할지 그 모든 질문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린 세상이다. AI시대 ‘인류의 상자’ 안에는 희망이 남았을까, 아니면 묵시록적인 절망이 남았을까.


AI 천국도, AI 지옥도 결국 인간의 일이다. 인간이 주도하고 결정한다는 말이다.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통과된 EU의 ‘인공지능 규제법’은 좋은 선례다. 성찰하고 결정할 시간은 길지 않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우리 자본주의(자)는 AI 문제도, 언제나처럼 인간의 돈벌이로만 계산할 것이다. AI 천국은 고사하고 ‘인간 지옥’이라도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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