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아나운서 모여라

차경애 전 KBS 아나운서 2024. 7. 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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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애 전 KBS 아나운서

7월 한여름에 들어섰지만 난 가끔 지난 5월의 봄 소풍을 떠올린다.

아나운서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소속사도 지역도 다른 아나운서들이 자그마치 90여 명이나 모였다. KBS MBC SBS CBS 국군방송 등에서, 원주 전주 함평 공주 청주 부산 뉴욕에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아나운서 클럽 이계진 회장의 자택인 관봉 동산으로 모여들었다. 꽃의 향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우리는 손뼉 치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당 가운데 걸려있는 현수막 ‘아나운서는 한가족 우리들의 유쾌한 만남’.

1950년대부터 방송을 시작한 원로 아나운서를 비롯해, 부산의 스타였던 전옥수 왕종근 선배도 참석했다. 김원태 선배는 소풍 전날 곤지암에 도착해 드론을 띄워 주변을 촬영하고 소풍날에는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해 유튜브 생방송으로 현장을 전해 미국의 정영호 강미란 뉴질랜드의 김운대 선배도 소풍에 참여하게 됐다. 부산MBC 출신인 전미리 선배는 선물이라며 미국 뉴저지에서 커피를 보내와 우리를 감동시키고 뉴욕의 양승현 선배는 십여 년 만에 모국 방문을 하면서 소풍에 참석하려고 출국 날짜를 조정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1970년대 오후 5시만 되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경의를 표하게 했던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스타카토식 아나운싱의 주인공, 최평웅 선배의 목소리로 행사는 시작됐다. 동아방송 아나운서실장이셨던 전영우 선배는 올해 90세인데 고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성과 발음이 정확했고. 특히 패티김의 노래 ‘사랑의 계절’을 작사하신 분으로 가사에 ‘들국화 소소로이 피고 코스모스 수련 수련 피었네’ 이렇게 쓰신 걸 보면 아나운서는 언어운사인 게 맞다.(우리끼리 아나운서를 한자로 言語運士라고 한다)

나를 아나운서로 뽑아주신 이규항 실장님은 야구와 씨름 중계로 유명했지만 부드러운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로 가끔 가요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셨다. 또한 음성과 음색, 말에 대한 연구와 해박한 지식은 아마 우리나라 최고일 것이다. 명랑운동회를 기억하시나요? MBC의 간판스타였던 변웅전 선배는 훤칠한 키에 웃는 얼굴, 호쾌하신 분이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모두 아나운서네요 떨립니다’ 하시며 농 섞인 인사말을 하신다. 방송국 개국 때마다 함께 했다는 이성화 선배는 지금도 서울 관악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관악FM에서 ‘쾌지나 청춘’ 방송을 진행하는데 올해 85세이시니 현역 최고령 아나운서다. 1959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상업방송인 부산 MBC에서 시작해 1961년 서울 MBC, 1964년 TBC, 방송국이 생길 때마다 문을 여셨단다. 그야말로 아나운서의 역사이고 방송의 역사이시다. 김상근 선배는 내가 신입 시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출연할 때 담당 피디였는데 원래는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가끔 아나운서가 피디나 기자로 전직을 하기도 하는데 김 선배는 피디 전직 후 ‘체험, 삶의 현장’, ‘TV는 사랑을 싣고’ 등 명작을 탄생시켰고 지금은 다시 아나운서 클럽에 돌아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나운서 단톡방을 즐겁게 만드는 걸 보니 개그맨 김준현 씨가 아버지를 빼닮은 것 같다.

소풍 진행은 김병찬 후배의 화려한 입담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행운권 추첨의 선물은 왕종근 선배의 진품명품 시간이 되기도 했으며 동요를 부를 땐 어린이 방송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유쾌한 만남은 한나절로 끝났지만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 남아있다.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가난했던 시절, 라디오 방송이 전부였던 시절에 방송을 통해 웃음과 희망을 주었던 선배들. 모두 높은 경쟁력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었지만 보람 뒤에 아쉬움도 많았고 방송 사고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꿈과 열정을 갖고 마이크와 함께 한 사람들이 소속사와 지역을 넘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건 큰 축복이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대한민국의 멋진 아나운서였고 소풍날도 그 고운 말씨 그대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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