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내려온 자리 이진숙이 채우나
탄핵 회피용 자진사퇴 방식 판박이
기자회견 없이 퇴임사 발표후 떠나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후임 거론
2일 오전 11시 진행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퇴임식은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날 1시간 30분 전 기습적으로 기자들에게 공지된 퇴임식에서 김 위원장은 퇴임사를 발표한 후 방통위 직원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곧바로 식장을 떠났다. 퇴임 기자회견은 없었다. 방통위 입구 앞에서 기자들이 사퇴에 대해 질문했으나 김 위원장은 답하지 않았다.
김홍일 방통위원장이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계획 의결을 마지막으로 자진 사퇴했다. 취임한 지 약 6개월만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방통위원장이 사퇴한 건 이동관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참석 예정이던 국무회의에 불참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즉각 김 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김 위원장은 퇴임사에서 “야당의 탄핵 소추 시도는 방통위의 운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 사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앞서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5당은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방통위원장이 탄핵 대상이 된 것이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수개월 간 직무가 정지되는데 그 전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선임 계획 의결을 끝마치고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현재 방문진 이사 임기는 8월12일 만료된다. 그간 민주당은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대통령이 지명한 2명의 위원만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며,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를 바꾸는 내용의 ‘방송3법’ 입법 후에 새 이사진 공모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방통위에 경고해왔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탄핵안이 발의되자마자 이날 저녁 방통위는 예정에 없던 전체회의를 공지했다. 바로 다음날 방통위는 방문진을 비롯한 공영방송 3사 이사진 선임 계획을 의결함과 동시에 KBS·방문진 이사 공모 절차를 시작하는 등 속도전으로 해치웠다.
탄핵을 피해 자진 사퇴하는 방식은 취임 9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이동관 전 위원장 때와 판박이다. 지난해 12월 이 전 위원장은 탄핵안 표결 3시간 전 자진 사퇴했다. 주요 탄핵 사유 역시 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방통위 ‘2인 체제 의결 위법성’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이상인 부위원장과 ‘KBS, SBS 등 지상파 재허가’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의결 등 주요 의사 결정을 해왔다.
이 전 위원장 사퇴 당시 “꼼수 사퇴”라고 비판한 민주당은 이번에도 “김홍일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장악에 부역하다 탄핵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줄행랑쳤다”고 지적했다. 또 자진 사퇴로 탄핵 절차가 무산되자 ‘방송장악 국정조사’를 추진키로 하고, 이날 의원총회서 국정조사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에 강한 유감을 표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본회의에서 “탄핵소추 대상자가 국회 표결을 앞두고 사퇴하는 것은 헌법이 입법부에 탄핵소추권을 부여한 뜻과 그에 따른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며 “고위공직자로서 매우 무책임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그대로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 탄핵소추권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동료 의원들의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했다.
방통위 위원은 이제 이상인 부위원장만 남게 됐다. 당분간 방통위 운영은 ‘올스톱’ 상황이 됐다. 다만 이동관 전 위원장이 사퇴하고 김홍일 위원장이 취임하기까지 약 29일이 걸린 만큼, 후임 임명도 발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국민의힘 몫 방통위원 후보로 추천됐던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이 거론된다. 이달 말 새 방통위원장이 임명되면 방문진을 여권 우위로 이사로 교체하는 선임안을 의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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