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가 모두를 구원하리라는 거짓말 [세상읽기]

한겨레 2024. 7. 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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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그래픽_김승미

김현성 | 작가

인터넷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이야기들 중 하나는 “일찍 일어나야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아주 이른 아침이나 새벽에 잠에서 깨는 점을 거론하며 자기계발의 거창한 방법론으로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이 담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터리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에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야 부자가 된다는 말은 고작 몇가지 반례만으로도 충분히 반박되지만, 어쩐지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또 우리는 역사 속에서 역시 많은 반례가 존재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국가의 정책 집행에까지 활용되는 담론을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감세가 경제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 정부는 이 논리를 충실히 따랐고, 이에 따라 부동산 보유세 및 양도소득세 중과율 등이 일제히 하락했으며, 법인세 역시 낮아졌다. 이 둘은 2023년 국세 수입 하락분 51조8천억원 중 80%에 가까운 41조2천억원을 차지했다. 국가 경제 활동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자들이 납부하는 근로소득세의 전체 국세 대비 비중은 2017년 13.2%에서 2023년 18%까지 상승했다.

물론 세수 감소를 단순히 감세 정책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기업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면서 법인세 수입 자체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수 감소에 대응하는 정책 결정권자들의 태도이다. 이렇게 줄어든 세수에 대한 정부 대응은 놀랍게도 각종 예산 삭감이었다.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카르텔이 있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사정기관의 수사, 감사와 해당 부문의 예산 삭감이 뒤따랐다. 국가의 미래에 중차대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한 연구개발비가 가장 먼저 삭감됐고,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겠다면서도 만혼 탓에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미숙아, 선천성 이상아에 대한 의료 지원 예산 역시 2023년부터 대규모 삭감됐다. 2024년 예산안에서는 아동·청소년 분야 예산도 다소 감소하였다.

교육 분야 예산도 칼날을 피해 가지 못했다. 2024년 이 분야 예산은 2023년보다 6조4천억원가량 삭감되었고, 그 대부분은 유아 및 초·중등 교육 분야가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한창 전자칠판 도입 등 교육 인프라 개선을 추구하던 일선 학교는 난감해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만세를 부른 곳들도 있다. 소위 ‘관변단체’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현 정부는 민간 시민단체들 역시 일제히 ‘카르텔’로 규정하면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지만 국고보조금 중 밝혀진 부정사용액은 0.46%, 지방보조금 중에서는 고작 0.007%에 불과했다. 하지만 카르텔로 지목된 대가로 시민단체 대다수는 보조금을 삭감당했고, 정작 관료와 유착이 문제시되는 관변단체들 보조금은 대폭 증액되었다. 기술 연구 개발 및 저출산, 교육 분야에 대한 지원금과 관변단체들에 대한 지원금 중 우리 사회 미래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감세는 증세와 마찬가지로 필요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증세와 달리 감세가 시행되면 현재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필연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이런 부작용을 피하려면 감세의 대상이 받는 혜택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우직하게 벌어지고 있는 감세 행진은 그 누구의 손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특정한 소수 사람들의 세금을 ‘줄이기만’ 하는 것이 그 목적으로 보인다. 이들에게서 세금을 줄이면 낙수효과로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는 논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반박되어왔지만, 그쯤은 현 정부 정책 의사결정권자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조세 정책은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변속기와 같다. 즉, 때와 상황에 맞춰 논리와 명분을 가지고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아무렇게나 감세를 시행하면 마치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고집스럽게 고단 기어를 넣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 된다. 일찍 일어나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짓말처럼, 감세만이 경제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거짓말이 그 생명력을 잃어야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더 나은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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