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실록

여론독자부 2024. 7. 2. 17:4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 그루 산뽕나무 왕조의 최후를 목격한 사관의 기록이 꼼꼼하기도 하다.

입술에 선명한 보랏빛 남기는 오디야 그렇다 치자.

굳이 밝혀야 될까 싶은 오디 먹은 방귀까지 적었다.

엄격한 사관은 한 마디 주관적 감정을 담지 않았으나 세세히 적은 항목이 어떤 형용사보다도 아프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원형
[서울경제]

우산과 양산이 되어준 허공 세 평

직박구리 지지고 볶는 소리 서너 되

바람의 한숨 여섯 근

불면의 밤 한 말 가웃

숫기가 없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늘 반 마지기

산까치가 주워 나른 뜬소문 한 아름

다녀간 빗소리 아홉 다발

오디 갔다 이제 왔나

고라니똥 같은 오디 닷 양푼

오디만큼 달았던 방귀는

덤이라 했다

산뽕나무 한 채 헐리기 전

열흘 하고도 반나절의 기념비적

가족사는 이러하였다

일가를 이루었던 세간이며

식솔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덩그러니만 남았다

한 그루 산뽕나무 왕조의 최후를 목격한 사관의 기록이 꼼꼼하기도 하다. 입술에 선명한 보랏빛 남기는 오디야 그렇다 치자. 어찌 무형의 것들마저 계량해 적었단 말인가. 직박구리 소리를 됫박에 담고, 바람의 한숨을 저울로 달고, 빗소리를 다발로 묶어서 세었다. 굳이 밝혀야 될까 싶은 오디 먹은 방귀까지 적었다. 엄격한 사관은 한 마디 주관적 감정을 담지 않았으나 세세히 적은 항목이 어떤 형용사보다도 아프다. 백성과 세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부사어 하나가 인류의 앞날처럼 쓸쓸하다. 덩그러니. <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