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26] 수액의 추억

교사 김혜인 2024. 7. 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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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아이가 한동안 설사를 하며 도통 먹는 게 없었다. 이러다가 탈수나 저혈당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의사가 수액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주저했다. 아이가 주삿바늘을 꽂고 수액이 다 들어갈 때까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때는 멋모르고 병원 진료를 잘 받았다. 그러나 첫돌 무렵부터는 몇 달 동안 진료를 거부하는 강도가 무척 심했다. 청진기를 대려고 하자마자 팔다리를 휘저으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와 간호사가 아이를 꽉 붙잡아도 아이가 발로 의사를 차는 것을 막지 못해 너무 당황스럽고 민망했다.

처음 호흡기 치료를 했을 때는 아이 울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했다. 그저 코와 입에 약물이 든 기체를 쐬어주는 치료인데, 아이는 아주 아픈 치료라도 받는 듯이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간호사가 분사구를 입과 코 쪽으로 향하게만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너무 발버둥을 치니 도무지 얼굴 쪽으로 향하게 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얼마나 크게 울었던지, 약 3분간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대기실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다시는 병원에서 이걸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가정용 호흡기 치료 기기를 구입했다.

진료 대기가 길어지기라도 하면 아이가 병원 바닥에 또 드러눕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하다. 아이가 바닥에 드러눕고 발을 구르며 울어서, 소란스러운 대기실을 평정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저마다 제 부모에게 칭얼대던 아이들도, 내 아이가 본격적으로 생떼를 쓰기 시작하면 모두 조용해져서 내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가 이처럼 소아과 최고 빌런이다보니 설사로 고생해도 수액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음 진료 때도 의사가 수액을 권했지만 그냥 돌아왔다.

때마침 언니에게 전화가 와서 이런 고민을 말했다. 언니는 아주 시원스럽게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는 다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마치 정형외과에서 처치를 하는 것처럼 부목을 대고 단단히 고정해 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결국 다음 진료 때까지도 설사 증상이 남아 있고 음식 섭취가 나아지질 않아서 의사가 다시 수액을 권했다. 세 번째 권유였다. “아이가 잘 맞을 수 있을까요?” 걱정스럽게 묻자, 의사는 “잘 맞혀야죠”라고 말했다. 언니 말도 있고 의사의 태도도 듬직해서 수액을 맞히기로 결정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간호사가 나와 남편에게 도움을 구했다. 내가 아이를 안고 남편이 팔다리를 잡고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꽂았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아이 거부가 너무 심하게 이어지자 간호사는 나와 남편에게 나가 있으라고 했다. 간호사 두 명과 의사 한 명이 더 들어갔고, 자지러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참 뒤에 의사가 먼저 나오고, 이어서 간호사 세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수액 줄을 꽂은 아이를 안고 나왔다. 깁스라도 한 것처럼 한쪽 팔 전체를 부목으로 고정한 상태였다. 아이를 나에게 안겨주며 다른 쪽 손을 잘 잡고 있으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해내는구나. 의료진 만세.

그러나 아이는 잠시 숨을 돌리며 전의를 가다듬은 모양이었다. 정말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기어코 수액 줄을 뽑아 버리며 다시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내 옷과 아이 옷, 바닥이 핏물로 엉망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아이가 제 엄마에게 안기며 무섭다고 울었다.

한바탕 난리를 수습하고, 우리 부부는 서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아이가 이만큼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아직 수액을 맞지는 않아도 되겠구나.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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