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티케팅에 실패하는 이유

한겨레21 2024. 7. 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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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매크로 업자들, 진화한 기술로 표 싹쓸이하고 고가에 되팔기
직접 써보니 ‘전석 매진’ 공연 예매 필승 “신의 손이 여깄네”
티케팅이 어려운 것으로 소문난 임영웅의 2023년 투어 콘서트 ‘아임히어로’ 장면. 임영웅 유튜브 갈무리

신의 손이 됐다. 매진 행렬이 이어져 ‘올해의 운을 다 써야 득할 수 있다'는 뮤지컬 <헤드윅>의 5차 티케팅. 그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어렵다는 배우 조정석의 출연 회차 예매에 도전했다. 58초, 59초, 00초, 클릭! 결과는 취케팅(예매 취소된 표를 잡는 행위) 포함 총 10장 성공. 2층 중앙 1열 브이아이피(VIP)석부터 1층 6열 아르(R)석까지 구하는 데 1분이면 충분했다.

조정석 막공, 에스파 콘서트… “실패란 없다”

매크로를 이용한 티케팅엔 실패란 없다. 에스파 콘서트, 위버스 콘 페스티벌, 올리비아 로드리고 첫 내한공연까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모든 공연을 예매했다. 남소정 제공

마지막인 6차 티켓 오픈 때도 여지없었다. 익숙해지다보니 오히려 한층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예매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뽀드윅(뽀얀 헤드윅, 조정석의 헤드윅을 부르는 애칭)을 볼 수 있는 티켓 12장이 추가됐다. 조정석의 막공(마지막 공연) 티켓은 가뿐히 2연석에 안착했다. 연전연승이었다. 에스파 콘서트, 올리비아 로드리고 첫 내한공연, 위버스콘 페스티벌까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모든 공연을 예매했다. 나에겐 실패란 없다.

어떻게 신의 손이 될 수 있었느냐고? 신의 손과 맞바꾼 돈은 단돈 1만원이다.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매크로 판매'를 검색하면 하루에도 50건 넘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가격은 2천원대부터 3만원대까지 믿기지 않을 만큼 저렴(!)하다. 원하는 가격대의 ‘매크로 쇼핑'을 하면 멜론 티켓, 예스24 티켓, 인터파크 티켓, 티켓링크 등 플랫폼별 티케팅 꼼수(직링, 자동호출코드, 밀리초, 취소표 보는 법)도 상세하게 추천해준다. 내가 산 건 ‘통합 매크로'였다. 단돈 1만원이지만, 어느 예매처에서든 쓸 수 있는 만능 매크로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언제든 볼 수 있는 시범 영상과 자주 묻는 내용에 대한 문답(Q&A)이 제공된다. 창작 콘텐츠 플랫폼 ‘포스타입'은 매크로 판매의 온상이다. 이곳에 매크로 판매업자들이 일괄적으로 최신 공지 사항을 업데이트한다. 매일 매크로 작동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꾸준함과 치밀함으로 구매자들에게 ‘안심'을 판다.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매크로’를 검색하면 2천원∼3만원대 매크로를 구입할 수 있다.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시범 영상과 자주묻는내용에 대한 문답도 제공된다. 남소정 제공
매크로를 이용한 뮤지컬 <헤드윅> 예매창. 일반 예매창과 다르지 않다.

매크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지만, 직접 해보니 3일 만에 익숙해졌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매크로 작동법의 원리를 익혔다. 핵심은 ‘좌표 따기'다. 좌석 범위, 좌석 색깔, 선택 완료 버튼의 좌표를 따야 한다. 복잡할 것 같다고? 전혀 아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기본 세팅이 끝난다. 1석부터 4석까지 몇 장을 예매할지도 정할 수 있다. 그리고 F1 키만 누르면 할 일은 끝난다. 배턴을 넘겨받은 매크로가 나 대신 티케팅에 참전한다. 가장 앞줄, 왼쪽 좌석이 자동 선택된다.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창이 떠도 매크로는 좌절하지 않는다. 세팅된 대로 ‘포도알'(좌석)과 ‘좌석 선택 완료' 클릭을 무한 반복한다. 마우스가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 손보다 빠르다. 무엇보다 사람은 지치지만 녀석은 지치는 법을 모른다. 나의 ‘세팅'이 끝나면, 당신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

정직하게 티케팅하면 손해인 세상.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암표의 개념은 단순했다. 원가보다 비싼 값에 되파는 티켓이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없는 세계라는 통념에, 어떤 방법으로 예매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기술은 간편하게 이를 뛰어넘었고, 매크로는 더는 업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 몫의 티켓 한 장을 구하기 위해 매크로를 산다. 보급용 매크로를 통해 티케팅에 성공했다는 사례담은 흔하디흔하다. 팬덤 문화가 점점 과열되고, 티켓 구하기가 어려워질수록 매크로 사용은 보편화했다. 티케팅에 실패한 이들은 입맛을 다시며 “나도 다음엔 매크로 써야겠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매크로를 써봤다.

‘매크로 이용 부정판매 처벌’ 무용지물

1년 내내 티켓 전쟁이 벌어지는 ‘2024 케이비오(KBO) 프로야구 리그’도 매크로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모든 구단 예매처에서 기본 세팅을 마치니, 몇 초 만에 결제창으로 넘어간다. 매 경기 박 터지는 두산과 엘지(LG)의 잠실 더비전에 도전했다. 3루 오렌지석, 1루 네이비석, 중앙 네이비석, 1루 익사이팅존, 3루 블루석, 1루 레드석까지 시도했던 모든 좌석이 순식간에 예매돼, 확인 메일이 왔다.

다만 야구 티케팅에서 매크로를 활용하려면 ‘최고급 영구 통합 매크로'를 써야 한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야구 경기는 특성상 콘서트에 견줘 잦은 빈도와 많은 좌석수, 구단별로 다른 예매처, 멤버십 선예매, 좌석 자동배정 등 단순한 매크로가 활개 치기 어렵게 하는 변수들이 존재한다. 사실 암표를 팔기 위한 다량 예매가 아니라면, 이 모든 과정을 세팅하는 것보다 사이트의 좌석 자동배정을 누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단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매크로의 진짜 꼼수는 따로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이 아닌 ‘직링'을 구매하면 된다. ‘직링'은 ‘직접 링크'의 줄임말로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바로 예매창으로 진입할 수 있는 링크 주소다. 업자들은 특정 경기에 적용 가능한 직링을 만들어 판매한다. 직링은 프로야구 예매뿐만 아니라 아이돌 콘서트에서도 인기다. 매크로 사용법을 익히기는 부담스러운데 접속 순서만 앞당기고 싶은 이들에겐 최고 선택지다.

변수가 많은 야구 티켓을 구매할 때는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예매창으로 바로 들어가는 5000원짜리 ‘직링(직접링크)’을 구매하면 된다. 모바일 버전, 피씨 버전 모두 제공된다. 남소정 제공

5천원에 직링을 구매했다. 숙지할 사용법 같은 건 없다. 판매자가 보내준 링크를 복붙해서 정각에 엔터만 누르면 끝. 노트북을 못 챙겨왔어도 걱정 없다. 모바일 버전, 피시(PC) 버전 두 가지 링크가 제공된다. 구매한 직링의 목표물은 류현진 선수 선발, 최정 선수의 역대 최다 홈런 기념 시상식, 불꽃놀이까지 ‘흥행카드'가 모두 겹쳤던 2024년 5월25일 인천 에스에스지(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한화의 경기다. 선예매에서 이미 매진됐다.

11시00분00초 정각, 내가 받은 번호표의 대기번호는 0번이었다. 팬들을 애타게 하는 ‘nnnn번째로 접속 중'이라는 대기창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살면서 대기창이 뜨지 않는 페이지를 처음 봤다. 같은 시간, 100번대 빠른 대기번호를 받은 팬조차 예매에 실패했다는 후기가 한화 이글스 팬카페에 올라왔다. 당하고도 알지 못하는 신세계, 디지털 새치기다.

4변수가 많아 매크로로 예매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야구 경기 예매의 경우 업자들은 ‘직링\'(직접링크)을 만들어 판매한다. ‘예매하기’를 누르지 않고 바로 예매창으로 진입할 수 있는 링크를 말한다. 왼쪽은 ‘직링’ 이용 예매창, 오른쪽은 ‘직링’을 이용하지 않은 일반 예매접속창이다.

3월22일부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공연 입장권 부정 판매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공연법이 시행됐다. 분야를 막론하고 티케팅이 ‘전쟁'에 비유되고, 각종 암표가 기승을 부리자 정부가 꺼내든 ‘방패'다. 무통장입금 결제 방식 제외, 비정상적 예매 건 모니터링, 안심예매창(사람임을 입증하는 창) 주기적 노출 등이 예매처와 소속사가 암표상을 막기 위해 쳐놓은 덫이다. 실제 효과도 있다. 멜론 티켓은 좌석 색깔이 조금씩 바뀌는 탓에 매크로가 ‘좌석 색깔' 좌표를 따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방패를 뚫는 창은 쉽게 개발된다. 매크로 업자들은 오차범위를 넓혀 세팅하는 법을 부지런히 개발했다. 하나라도 막히면, 한 단계 진화된 ‘창'이 등장한다.

매크로와 암표상들을 오래 관찰하다보니 의문이 남았다. 암표란 무엇인가. 매크로를 써서 자기 티켓만 산 사람도, 매크로를 쓰지 않고 예매한 표를 비싼 값에 되파는 사람도 많다. 업자에게 수고비를 주는 방식으로 대리 티케팅을 맡기는 팬도 수두룩하다. 그런 상황에서 암표의 정의는 모호하고, 개인을 향한 암표 근절 외침은 뚜렷한 실체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500만원까지 치솟은 임영웅 ‘암표’

매크로 판매업자들의 본업은 따로 있다. 매크로 판매는 부업일 뿐이다. 2024년 5월2∼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드림쇼'. 티켓 오픈과 동시에 3회 공연 전석 매진으로 총 6만 관객을 동원했다. 막콘(마지막 콘서트) 당일, 매크로를 파는 트위터에선 200건 넘는 암표 판매 글이 올라왔다. 몇 시간 뒤면 공연이 시작되는데도 암표상들은 여유로웠다. 표를 원하는 팬들의 간절함을 익숙하게 꿰뚫고 있었다. “170만원, 쿨거래시 165만원” “135만원, 절반 선입금 후 나머진 현장이체” “거래 시간과 장소는 변경 불가” “티켓은 돌려주실 분”. 판매자들이 오히려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고, 티켓을 구하는 팬들은 절실한 답글을 남겼다. “즉시 입금 가능합니다” “입성 목표라 아무 좌석 상관없어요” “제발 연락 주세요”. VIP석 시세는 가볍게 100만원을 넘겼고, 고척돔에서 시야가 가장 안 좋은 4층 맨 뒷줄조차 “가장 높게 제시한 사람”에게만 최후의 답장이 전해졌다.

엑스(X·옛 트위터)에는 인기 공연 티켓을 다량구매한 ‘매크로 업자’들이 태연하게 표를 비싼 값에 되판다. 암표상들은 수백만원대 가격의 티켓을 내놓고 구매자들은 가격이 얼마든 표를 넘겨달라고 절실하게 댓글을 단다. 남소정 제공
2024년 5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임영웅 콘서트장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겉돌’하고 있다. 남소정 제공

임영웅 콘서트가 열렸던 5월26일. 상암 월드컵경기장 주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입장객들은 웃으며 사라졌고,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경기장 주변을 메웠다. 이른바 ‘겉돌'(티켓 없이 콘서트장 겉을 도는 것)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임영웅 콘서트 티켓은 최대 500만원까지 암표 가격이 치솟았다. 충남 예산군에서 올라온 이예은(73)씨는 “딸과 콘서트장 밖에서라도 노래 들으려고 왔다”며 “이번 티켓은 정말 구하기 어렵더라”라고 말했다. 반면, 암표상들은 콘서트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표 한 뭉텅이를 온라인상에서 팔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티켓들을 번호까지 매겨 다른 가격으로 팔았다. 그들은 숨지 않는다. 콘서트 현장거래, 직거래처럼 얼굴을 보고 하는 거래도 거리낌 없었다. 임영웅 콘서트인데 이럴 줄 몰랐느냐며 오히려 당당했다. 60만원을 요구하는 암표상에게 “10만원만 깎아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30만원대를 찾아보려 했지만, 찾기 어려웠다. 이번 임영웅 콘서트에서 가장 비쌌던 테이블석 원가는 19만8천원이다.

‘다량 예매’ 막을 골든타임 있을까

임영웅 콘서트 예매는 ‘안심예매창'이 5초가 멀다 하고 떴다 바뀌는 등 계속되는 퍼즐 맞추기 요청에 매크로를 작동시키기가 정말 어려웠다. 값싼 매크로로는 세팅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다량 예매에 성공했고, 그러다보니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렸다. 여기에 암표에 대한 역설적 해법이 있는 건 아닐까. 티켓이 오픈되는 그 순간만이 매크로를 통한 다량 예매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이후 모니터링을 통한 제재, 티켓 거래 단속, 콘서트 입장 직전 철저한 본인 확인 등의 조처는 모두 사후약방문이다. 티케팅에만 성공하면 웃돈을 주고 맡기는 대리티케팅, 팔찌 옮기기(콘서트 당일 입장 팔찌를 수령한 뒤 티 안 나게 넘겨주는 것)까지 티켓을 되팔 수단은 셀 수 없이 많다. 직접 매크로를 사용해보니 티켓 오픈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비정상적인 예매 패턴을 탐지하고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만이 방지책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팬이 억울하게 오해받지 않도록 정교한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말이다.

남소정 한겨레교육 수강생

* 한겨레교육에서 진행한 ‘김완 기자의 실전 100% 기획기사 워크숍’ 수강생들이 8주에 걸쳐 직접 취재·작성한 기사 가운데 몇 편을 <한겨레21> 독자에게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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